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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기자, 여행감독 1호, 재미로재미연구소 소장. 이메일 gosisain@gmail.com 트위터 twitter.com/dogsul 페이스북(페이지) facebook.com/kojaeyoul 독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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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자에게 경제 위기는 더 가혹했다

298세대 아이콘 100 | 2008. 12. 10. 18:25 | Posted by 소셜미디어의 촌철살인마 독설닷컴

<독설닷컴>에서 화두를 던진
298세대론(386세대-88만원 세대)에 대해
호주에서 심선희님이 글을 보내오셨습니다.

먼저 298세대론이
대졸자 위주로 진행되는 것에 대해
따끔히 지적해 주셨습니다.

저도 그 부분이 꺼림직했는데,
잘 지적해 주셨습니다.

다시 경제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고졸자에게 더 가혹했던
10여년 전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다음은 '298세대론' 관련 글입니다.

2008/12/09 - [298세대 아이콘 100] - 1990년대의 추억을 담은 다섯 통의 편지
2008/12/07 - [298세대 아이콘 100] - 1996년 8월, 내 인생의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298세대론)
2008/12/06 - [298세대 아이콘 100] - 어느 90학번의 기억 속에 남은 1980년대의 잔상
2008/12/03 - [298세대 아이콘 100] - 386세대와 88만원 세대 중간의, 298세대를 아시나요?



 

(글 - 심선희, 호주)


안녕하세요. 


다음에 떠있는 블로그 제목을 따라서 글을 읽어보니 바로 저의 세대이야기를 해주셔서 참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대학교 위주로 글들을 써주셨더라구요. ^^


저두 대학을 뒤늦게 졸업을 했지만 실업계고 출신으로 IMF를 맞던 당시의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중학교 때부터 김영삼 정부의 교육 정책이 실업계 고등학교를 지원해주는 정책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집안사정도 있고 또 주변에 벌써 대학 나와서 노는 삼촌들도 보이고 그래서 인문계를 갈수 있는 성적에 불구하고 서울에서 1, 2위권에 있는 여자 실업계 고등학교를 진학하게 됩니다.


그 학교는 제가 3회 졸업생일 만큼 나라에서 실업계고 육성을 위해 엄청난 돈을 부어 만든 학교였죠.


학교 과정은 그 당시 한참 유행한 "전산고등학교"였습니다(후에 정보통신고로 변경이 되었더군요). 


대부분의 커리큘럼은 과거의 주산, 회계에서 벗어난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전산기초 이론에 관한 것들 이었습니다.


당시 많은 여상이나 상업계 고등학교들이 이때쯤(90년대 초반) 이름들이 하나둘씩 전산고등학교나 정보고등학교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고등학교 2학년때 쯤 되자 산업인력이 모자랐는지 김영삼 정부는 실업계고등학교를 대상으로 2+1제도를 신설합니다.


2년은 학교를 다니고 마지막 3학년은 산업체로 보내져 싼 임금에 노동력을 착취(?)하는 제도였죠.. 한마디로 인턴제도였던 것입니다..



사진에 나오는 기업은 본문에 나오는 S기업과 상관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S대기업과 연계가 되어 있어서 한 반 전체가 S그룹에서 교육을 받고 나중에 각 계열사로 뿌려져 일을 하게 됩니다.


그 당시 제가 들어간 회사는 보험회사였는데 그 당시 5년차 언니가 해줬던 말이 생생합니다.


"지금은 학교 안가고 그래서 좋겠다고 생각하겠지만 나중에 나이 들면 많이 후회하게 될꺼다"라고.


그 말을 이해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습니다.


남들보다 빨리 사회생활을 해서 그런지 졸업식 날 제일 많이 우는 애들도 우리반 애들이었습니다.


그만큼 사회의 쓴맛을 먼저 맛본 것이죠.


96년도는 우리가 졸업하고 정식으로 직원이 되었던 해였습니다.


그 당시 기억하는 건 기업들이 초호황으로 인해 인력이 모자랐다는 것입니다. 임금이 96년을 전후하여 참 많이 올랐었고 기업들이 사원들에게 복리후생같은 것도 참 많이 뿌렸던 것 같습니다.


일명 샴페인을 일찍 터트린 시기였죠.


일례로.. S그룹 회장님이 IOC 위원 당선이 되시 마자 S그룹 직원들에게 그 당시 시가로 약 50만원 정도 하던 자동카메라가 한대씩 뿌려졌었습니다.


그리고 명절 때마다 나오는 선물들.. 그 당시만 해도 IMF는 정말 달나라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정식 입사한지 2년도 안 되는 시점에 IMF가 터져 버립니다.


아직도 생생한 그날의 기억...


제가 부서의 막내였기 때문에 항상 신문을 우편함에서 가지고 팀장님 책상과 팀원 회의실 자리에다가 옮겨놨는데 정말 나라가 망한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잘 몰랐지만 나이 드신 과장님과 팀장님의 얼굴들은 모두 굳어져 있더군요.


실질적으로 IMF 가 터진 건 97년 12월이었지만 회사가 느낀 IMF는 그보다 좀 늦은 98년 4월부터였습니다.


슬슬 명퇴 이야기가 나오고 실적 안 좋으신 영업지점장이 짤렸다는 소리가 들리고..


암튼 그 당시 직장 다니던 사람들의 IMF는 98년 봄부터 시작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보험회사에 있다 보니 여러 고객님들이 있는데 그 당시 IMF 터지고 엄청난 고금리에 좋아하시던 분들도 많이 봤습니다.


은행도 고금리 상품을 많이 팔았지만 7년 이상 묵혀두면 비과세가 되는 보험 특성상, 정말 돈 많으신 분들은 저축성 보험으로 많이 몰렸었습니다.


저는 실제 보진 못했지만 어느 영업소 여사원은 고객이 자루로 현금을 들고 와서 돈을 입금시키는 바람에 그거 세느라고 새벽에 집에 갔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었습니다.


그만큼 그 당시 돈 있던 사람들한테는 IMF는 분명 기회의 시기였죠..


98년.. 당시 저는 산업체 전형으로 야간대에 붙은 대학 새내기이기도 했습니다.


저와 비슷한 형편의 친구들(공부를 하고 싶었으나 집안 사정상 실업계 고등학교를 갈수 밖에 없었던..)도 다 각자 회사에서 구조조정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저를 비롯해 비슷한 나이의 학교 친구들은 대부분 희망퇴직을 하고 공부에만 전념을 하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희망퇴직....퇴직을 희망한다. 그때 퇴직을 희망했던 사람이 있을까요?  


20대 초반에.. 나라에서 제시해줬던 고졸인력의 찬란한 미래는 단지 희망이라는 걸 너무나도 빠른 시간 안에 깨닫게 되어버린 거지요.


그리고 IMF가 터지면서 영어의 중요성이 더욱더 부각됩니다.






그래서 지금 한창 인기 있는 호주 워킹홀리데이가 이때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하죠.


저를 비롯한 많은 학교 동기들이 하나둘씩 호주에 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2000년 이후부터 호주관련 까페들이 생기고 많은 ‘워홀러’들이 생겨나기 시작하구요.


저두 워킹홀리데이를 기회로 지금은 호주에서 영주권을 받고 살아가고 있지만요.


아마 2000년 전후에서 정말 많은 젊은이들이 호주로 밀려오기 했습니다.


2002년 월드컵은 호주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을 때라 호주 브리스번 퀸스트리트 한복판에서 봤었습니다.


아직도 감동으로 기억나는 TV 아나운서의 말은 "잠시 응원을 감상하시겠습니다"였습니다.


한목소리로 부르짖는 "대~한민국" 소리가 여기 호주 아나운서가 듣기에도 참 소름끼칠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나봅니다.


96년부터 2002년까지 제 경험을 주저리주저리 썼지만.. IMF를 전후한 저의 20대 초반은 저에게 참 많은 경험과 세상의 무서움을 알게 해준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정말 한번 회사 들어가면 평생 다닐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그때 알게 되었고, 우리나라의 학벌 장벽이 정말 대단하다는 것도 그때 알았고, 돈 있는 사람은 이런 위기 때 돈 번다는 것을 정말 몸으로 깨달았고, 영어를 못하면 정말 이젠 밥 먹고 못사는구나를, 깨닫게 한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취업했던 학교 동기들이 뭐하고 사는지 궁금하네요.


혹시 제 글 블로그에 게재해 주시면 M전산여고 3학년8반 학생 좀 찾아주세요.


1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 다들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호주에서.



주> 심선희님이 졸업하신 학교는
미림여자전산고등학교(현 미림여자정보과학고등학교)로 추정됩니다. 
3학년 8반 분들은 댓글 주시면, 심선희님과 연결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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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나야나 2008.12.11 0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0년후 내가 이 글쓴이 처럼 될지 누가 알았겠어...시기도 똑같네...직장은 비정규직 이란 이유로 당장 이번달 말까지이고, 아마 내년 봄부턴 줄줄이 명퇴, 감원 희망퇴직인데...
    30대의 첫 신고식을 백수로 해야한다는게 너무 싫다 요즘...!!!

  3. 막소 2008.12.11 0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 제 여친과 같은 학교, 같은 나이시군요. 지금 시집가서 애 둘이나 낳고 잘 살고 있다고 하던데.. 암튼 우연히 같은 학교 출신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나네요.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naver BlogIcon 바 람 2008.12.11 0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그때 당해본 사람들은 안다.
    왠만해선 다 대졸이였다.
    그와중에 실업고 출신 고졸이 직업을 바꾸는건 거의 불가능한일이였다.
    직업을 바꿀수 있는 폭자체가 없었으니까. 잘해봐야 서비스업이였지만 그나마도
    대형레스토랑은 같이 입사해도 각종 호텔전문대출신들에게 밀리고 시작하는 경우
    가 많았다.

    그럼 안바꾸면 된다고 ??
    이글 쓰신분처럼 상고나와 또는 전자계열 공고나와 한전,삼성등에 입사한분들은 몇
    년은 괜찮았다 하지만
    그 비율이 실업고 전체에서 몇 % 였냐고...
    나머지는 그냥 산업체라 불리지만 작은 공장막내나 경리등이 일자리의 대부분이였어
    가서 하는일은 오직 단순노무...

    기술이라도 있으면 먹고 살겠지 싶어 공장막내로 들어가 죽자사자 형들에게 까여가며
    기술배웠지만 그럼 뭐해요...

    IMF터지고 나서 줄줄이 쓰러져가던 중소기업들 생각나나요 ??
    어음결제로 인해 흑자내고도 연쇄적으로 쓰러지던...

    그렇게 배운기술이 그렇게 내 이유가 아닌 정말 당시는 어처구니 없는이유로
    뻑하면 월급밀려 생활이 안됐으니까... 조금 받아도 당장 매월 월급주는 곳으
    로 옮길수 밖에...

    그렇게 살았다고
    그 당시엔 IMF의 희생량이 취직못한 대졸자들이였고
    퇴직하면 몇천에서 억까지 기대할수 있는 중대기업 사원들이라고 떠들었지

    그 와중에 몇개월씩 월급밀리던 우리들은 일자리 있으니까로 대충...



    그때 이악물고 돈모아서 가게 차린이유야


    현장인력 필요하니까 부추겨서 실업고에 몰아넣고 정작 쓰러져나갈땐
    관심조차 주지 않던 이나라 대단했던 언론과 그때 그 분위기들...

  5. 2008.12.11 0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엠에프때 부산대 짜르고 서울대만 남겨놓은거에 한이 맺혀서, 아들을 악착같이 공부시켜 서울대 보냈다는 부산대 나오셨던 분의 얘기가 갑자기 생각납니다, 당시에 실업고 출신의 직원들이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지 짐작이 갑니다

  6. pantera7604 2008.12.11 03: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상물정 모르고 이런글 쓰신거 참 어리석다고 봅니다. 지워주세요. 지금 어느 실정인지 직접 체험하지 못하시면 글올리시지 말던가. 더했다구요?? 저도 비슷한 연배에 고졸입니다(제가 더 많군요). 그리고 IMF때 명퇴(?)하고 군대 입대한 청년입니다. 지금은 아저씨지만. 지금의 실정은 님께서 생각하는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재의 실정. 10년전에 받던 월급이 지금도 그 수준일뿐더러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4년제대학나온 친구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 서울에 있는대학나와서 일하고 있습니다만. 회사가 어려워 언제 짤릴지 모르는 실정입니다. 전 S사는 아니지만 L사의 안양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있었구요. 그시절이 어렵긴 어려웠으나 지금같이 어렵진 않았죠. 왜인줄 아세요? 10년전에 받던 월급을 10년동안 받고 그것보다 못한 월급을 10년동안 받고 그것도 못받아 감봉되는시점에 언제 짤릴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마음을 당신이 알리 없다고 봅니다만..물가는 10년치가 올랐지만 10년동안 연봉은 10%로 올르지 않았죠(대부분) 뭘좀 알고 글 올려주세요. 이런글 보면 한숨나오네요.

  7. Favicon of http://nfr.co.kr BlogIcon 핵융합 2008.12.11 03: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희망이 있습니다. 상온의핵융합 검색바랍니다.
    http://nfr.co.kr

  8. Favicon of https://poisontongue.sisain.co.kr BlogIcon 소셜미디어의 촌철살인마 독설닷컴 2008.12.11 06: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직 미림여자전산여자고등학교 3학년8반(1996년 졸업) 친구분은 안 오셨네요.
    꼭 연결해 주고 싶은데...

  9. 글쎄 2008.12.11 08: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문에서 '고졸 기술 인력 부족' 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믿는거 같은데..
    '싼 임금 줘도 되는 고졸이 부족' 이라는 말일 뿐이라는걸 알아채는데 오래 걸릴까요?

    조만간 신문들은 또 떠들껄요?
    또다시 저임 노동자가 필요한 시기가 왔으니까요.

  10. 같은세대 2008.12.11 08: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랑 심선희님이랑 같은 해에 졸업을 했군요. 저는 남자로 공업고등학교에서 2+1을 경험했었지요. 본문에서 언급되었듯이 그때 호황기라 인력이 여기저기서 부족했고, 공기업도 마찬가지였지요. 다른 친구들은 S그룹, H그룹, K자동차 등의 대기업(허울뿐인 공돌이)으로 취직을 나갔지만, 저는 어쩌다 그때당시는 아무도 쳐다보지도 않던 공기업으로 입사했더랬죠. 월급도 적고 단지 이름때문에 간거였는데, 지금은 세상이 바뀌어 S그룹 다니다가도 때려치고 입사하는 그런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죠. 저같은 경우는 운이 좋았지만, 제 친구들은 지금 제구실 하는 친구가 없을 정도입니다... 참 암울한 세대임은 틀림없어요..

  11. 유경 2008.12.11 08: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첫번째 동창생인가요? ^^..선희야~나 유경이..ㅋㅋ..같은 층 옆 부서에 있었지..
    호주에 갔단 소식은 들었는데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너무 기분좋네..
    네 글 읽으니 잊고 있었던 지난 날이 새록새로 떠오르면서 눈물이 핑 도네..
    운영자님~ 저희 꼭 좀 연결해주세요....ㅎㅎㅎ

  12. 선희야 안녕? 2008.12.11 08: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희야 안녕? 내가 누군지 잘 모를거야...ㅋ 같은고등학교 같은 회사에 들어가서 난 아직까지 근무하고있는 동기동창이란다..ㅋ 첨에 다음에 글제목을 보고 같은입장에 있는 사람이구나 싶어서 들어와봤지. 난 사실 긴글은 잘 안읽는편이었는데.. 읽다보니.. 어?어? 이상하다 싶더라구.. 나랑 비슷한상황이네싶었지.. 니가 쓴글이란걸 다 읽고난후에 알았지. 니가 호주로 갔다라는걸 알고있었는데 아직도 호주에서 지내고있구나. 당시 너의 용기를 비롯하여 많이 부러웠는데 지금도 부럽단다..ㅋ IMF때와 같이 극박하진않지만..지금 경기침체로 우리회사뿐만 아니라 나라전체가 힘들단다..너와 같은 반이 아니어서 날 기억할질 모르겠다만.. 딱보면 알그여?ㅋ 키가 커~ㅋ 나중에 함 볼수있었으면 좋겠네..꼭 8반 아니어도 되지?ㅋ 난 6반이었단다 지금 너의 글을 원유x 친구에게 메신저했다. 원유x , 조소x 친구들 기억하지?
    나랑 원여사는 아직도 근무중이니.. 한국에 오면 S회사에 전화해서 연락처물어보고 연락줘..ㅋ 건강하고 안녕~~

  13. 김정엽 2008.12.11 09: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 댓글 보니 96년 졸업생?
    몇살 먹지도 않았구만 글보면 디게 노땅이네//
    나가 97년 졸업이니 별차이도 없네..
    우리때는 서울에서 1,2위권 실업계그런거 별루 없었거든요?
    인문계 갈 성적? 반에서 꼴찌,아니 전교에서 꼴지도 인문계갔습니다..
    혹시 마라도에서 학창 시절보내셨어요?
    서울은 그때쯤엔 평준화 다됐었거든요?
    글을 쓰시려면 쫌 생각좀 하시져?

    • ... 2008.12.13 15:42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미림전산 7회 졸업생인데... 꼴찌나 가는게 실업계 고교라고 하시니 마음이 좀 그렇네요. 저희가 학교 다닐때 선생님이나 가끔 학교에 찾아오셨던 대선배님들이 항상 하시던 말씀이 너희는 예전대에 비해 입학성적이 많이 떨어졌으니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씀이셨죠. '우리 학교는 개교때 10% 안팎의 학생들이 왔었다'는 저희에게 프로그래밍을 가르치시던 선생님이 항상 하시던 자랑이자 채찍질중 하나였구요. 저희가 그렇게 떨어지는 성적으로 입학한 것두 아니었는데요. 그 정도로 저희 학교는 우수한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규율도 굉장히 엄격했구요.....
      저희 학교와 대선배님께 이런 댓글이 달리는걸 보니 마음이 영 좋지 않아 글 씁니다.

  14. 걸어서지옥까지 2008.12.11 1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그때 생각하니 눈물이 왈칵 쏟아 질려고 하네요..
    imf때 이십대 후반이었었는데 그때 월급이 한달 150정도 받다가 구조조정 안한다는 조건으로 100-120정도로 임금삭감하기로 했었는데 그 돈만저 imf 때문에 회사에서 월급이 한달에 세번 나눠서 나오고 그랬었는데 어떤달은 한달에 두번 나오고 나머지 한번은 다음달 첫주에 나오고 진짜 안 당해보 사람들은 모를껍니다 그때의 비참함이란...

  15. SIDNEY 2008.12.11 10: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정엽님은 잘 모르시고 하는 말인듯 하네요. 전 그 학교 1회 졸업생입니다. 우선 후배님 글을 여기서 보게 되어 반갑니다. 입학당시 꼴찌가 중학교 내신 20%였을때니까 뭐 나름 좋은 학교에 입학했다는 자부심도 많았던 때였습니다. 나름 아픔이 많았던 시기였습니다. 제동기들의 절반이상 S그룹에 입사했지만 지금 회사에 살아남은 동기들은 몇 안되며 거의 대부분 퇴사후 대학이나 유학을 많이 갔습니다. 학교와 회사의 괴리가 너무 컸던 거죠. 예전 생각 많이 나네요. 암튼 잘 지내고 있는 듯해서 보기 좋네요.

  16. 옆학교 학생 2008.12.11 1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79년생이고 그 근처학교 다녔어요, 중학교에서 실업계 지원할때 그 학교랑 s여상은 내신 30%정도 되야 합격하는 학교였어요~그 학교랑 s여상이 서울 1,2위권 실업계 학교였어요~

  17. 수기 2008.12.11 1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98세대라 함은 시대적으로 보면 지금 저도 포함되는지 모르겠지만 저보다는 3~5년은 앞선 분들의 얘기인것 같네요... 같은 세대라고 생각했는데 조금은 다른 세대라 생각이 드네요
    저두 여상을 졸업하고 IMF의 여파로 전문대학을 입학하면서 지금은 졸업과 동시에 얻은 직장에서 현재 8년의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 직작인입니다. 그닥 유년시절은 어렵게 지내오지 않았던 세대인것 같습니다. 저때만 해도 상고를 가는 애들을 보면 집안 형편이 어렵다기 보다는 중학교때 교과서와 등하시 한 애들이 상고를 많이 갔었거든요(저두 그 무리속에 속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집안 형편상 상고로 진학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하니 저와 같이 학교를 다닌 친구들은 많은 해택과 풍요를 즐겼던 세대 일수도 있겠어요...지금 세대 애들보다 더...
    같은 또래인 친구들을 봐도 집에서 맏이면 맏이 대로 집에서도 해택을 누리고 막내면 막내대로 많은 물질적 사랑을 받아던 세대라 그런지 고3때 닥친 IMF는 그냥 손쉬운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한 핑계거리밖에 되지 않았어요.

    노태우 김영삼씨 대통령 출마할때랑 저는 부산 금정출신이라 김진재아저씨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를 할때마다 사전 답례품?으로 생활필수품(수건은 필수,비누,쌀,떡,현금까지)을 충당할 수도 있었구요. 어린이날,운동회,소풍때는 돈 많은 반장,부반장들이 있어 매달 크리스마스 기분을 느낄수 있었죠...그리고 필수품처럼 생각했던 미제와 일제품...저희 세대는 그랬던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문화적 해택도 많이 받아 축복받은 세대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사회적,경제적 관심이 전혀 없는 세대라고 할수 있겠어... (지금의 촛불시위도 남일)
    모르긴 해도 년생별 사회적응도나 경제관념도 많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요...어찌보면 무지해서 불쌍한 세대죠...

    • 수기 2008.12.11 1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중요하지만 빠진 얘기 하나 있네요..저 직장은 잘 다니고 있지만 감원대상 1순위 입니다. 실물경제위기인 지금 고학력 인력이 남아돌아서 인가요 학벌 안되는 우리보고 나가라고 합니다...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18. 아이 2008.12.11 18: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한참 어리지만.. 정보산업고 디자인 전공으로 나와서(저 중학교때 딱 아엠에프가 터져서.. 기술있어야 먹고산다고들 했지요;;) 대강 서울 어디에 있는 전문대 갔다가 중간에 21살때 중소기업에 아무것도 모르고 입사했습니다. 아르바이트-계약직-파견직- 정규직 순으로 밟았고 일한지 한 6년차 쯤 되네요. 요즘 보면 남자애들의 경우에 군대갔다와서 대학교 졸업했거나 아니면 일년 이년 휴학한 애들이 딱 취업할 시기인데 모두 저더러 일찍 자리 잡았다고 부러워 하네요. 저역시도 고졸인게 사실 마음에 걸려서 야간대로 올해 2월에 전문대라도 졸업했구요. 그동안 제 분야쪽 교육 이며 세미나 사비들어서 다니느라고 돈이 많이 쪼들렸습니다. 지금도 학자금때문에 빚이 많고요. 요즘 다들 취업 안되고 아르바이트 뽑는데 경력 많고 나이 많으신 분들 이력서가 엄청나게 밀려들어오는거 보면 참 씁쓸하면서도 그동안 뒤도 안돌아보고 달려온게 뿌듯하긴 하네요. 앞으로도 열심히 해야겠네요. 그냥 지나가다가 끄적여 봅니다.;;

  19. 난4반 2008.12.14 09: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난 4반이었는데.. 아쉽군.....ㅋㅋㅋㅋ
    덕분에.. 졸업한 이후 처음으로 졸업사진을 찾아봐야겠네.. ^^

  20. 지얌 2008.12.15 23: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윗 분들 댓글 엄청 달렸네요. 저도 글 읽자마자 이분 미림전산 나오셨구나 딱 알아봤습니다. 저희 집 가정형편으로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실업계를 선택했었습니다. 저는 해성여자전산상업고등학교 34회 졸업생이고 97년 졸업했는데요, 저 입학당시 미림전산상업고 날렸는데 상위 25%지원 할 수 있었죠 저도 집이 멀지만 않았으면 미림이나 서울여상 갔을텐데 집이 통학거리와 넘 멀어서..ㅎㅎ저도 3학년 1학기부터 취업으로 회사에서 일했는데 그게 노동력 착취였구나...아직도 몰랐어요.. 제 절친도 님께서 말하시는 s 대기업 물산쪽 취업했었습니다. 그 친구는 아직도 S기업에서 일합니다. 사장님 비서실에 발탁되어 10년넘게 일하고 있네요. 저희 학교도 s기업과 연계되어 거의 전교생의 반정도가 S기업으로 취업이 되었었네요. 전 그땐 좀 생소한 인터넷 관련기업체에서 일하다가 IMF라는 난국을 만나 막내로서 퇴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전부터 대학가려고 준비하던터라(악기에 소질이 있었답니다)지금은 음악대학나와서 학원강사 하고 있어요. 10년도 더 지났던 땐데, 98년 봄 겨울도 아닌데 참 추웠더랬죠..^^;; 기억이 새록새록

  21. 이혜원 2013.12.18 0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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