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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기자, 여행감독 1호, 재미로재미연구소 소장. 이메일 gosisain@gmail.com 트위터 twitter.com/dogsul 페이스북(페이지) facebook.com/kojaeyoul 독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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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8월, 내 인생의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298세대론)

298세대 아이콘 100 | 2008.12.07 06:11 | Posted by 소셜미디어의 촌철살인마 독설닷컴


<독설닷컴>에서 화두를 던진
298세대론에 대해서

(386세대와 88만원 세대 중간층
1970년대생, 1990년대 학번 이야기)
김상철님이 글을 보내왔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386 세대와 88만원 세대 사이의
'잃어버린 세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298세대론을 함께 써 나갔으면 합니다.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가 해야죠.
기고 대환영입니다.)




1996년 연대사태. 학생들이 '우리는 집에 가고 싶다'는 글을 써서 들어 보이고 있다. 뒤에 유리창에 '엄마 배고파'라는 글귀가 보인다.



1990년대에 대학을 다니면서 '연대사태'라는 1980년대적 상황을 겪었던 96학번 분이 글을 한 편 보내왔습니다.
서태지니 엑스세대니, 소비대중문화의 첨단을 달리던 이들에게 갑자기 들이친 '연대사태'는, 타임머신을 타고 1980년 광주로 되돌아간 듯한 낯선 일이었을 것입니다. 
나들이 가는 기분으로 촛불집회에 나갔다가 물대포를 맞아본 분이라면 그런 감정을 어느 정도 이해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 글을 읽으면서 공지영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공지영의 겉멋보다 훨씬 진솔해서 좋았습니다. 
이 글이 96학번 건축학부님의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는 씻김굿이 되었으면 합니다.
96학번 분들, 특히 '연대사태'를 직접 경험하신 분들은 더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2008/12/06 - [298세대 아이콘 100] - 어느 90학번의 기억 속에 남은 1980년대의 잔상
2008/12/03 - [298세대 아이콘 100] - 386세대와 88만원 세대 중간의, 298세대를 아시나요?



연대사태 당시 정문 대치 모습.





1996년, 내 인생이 꼬여버렸다



(글 - 96학번 건축학부생)



298세대라...386에 무시당하고 88세대에게 치이는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미는 어중간한 세대, 그다지 뚜렷한 영광과 시련도 없는 우리사회에서 무색무취한 세대의 대명사 정도 되겠네요.
 


구체제 호황기의 소비계층 대명사 엑스세대의 끝물, 김영삼 세계화 시대의 새싹, IMF시기에는 군대에 격리, 제대 후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 등등...얼핏 떠오르는 기억의 실마리들인데, 아무튼 96학번 건축학부생 기준으로 써 봅니다. 298세대가 겪었을 만한 것들을 연도별 키워드로 뽑고 제 개인적인 코멘트를 달았습니다(제 기억에 의존하여). 
 


1992년 - 서태지1집, 넥스트 1집, 일본만화 열풍(북두신권 시티헌터 드래곤볼 등등), 여명의 눈동자, 홍콩영화 전성기
 


기라성 같은 뮤지션들이 쏟아져 나오거나 자리 잡는 시기였죠. 더불어 일본만화가 개방되었던 시기였습니다. 워크맨의 보급과 함께 중고딩들이 본격적인 문화소비자로 떠오르던 시기가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여명의 눈동자...참 어린마음에 많은 것을 느끼게 했었던...말이 필요 없는 드라마였죠. 코 묻은 돈으로 OST까지 샀었는데 표절로 판명되었습니다.ㅠㅠ
 


1993년 - 고등학교 입학, 내일은 사랑 (KBS 이병헌), 듀스 1집, 슬램덩크, 엑스세대열풍, 트윈엑스 화장품 광고(최대 히트광고, 이병헌, 김원준), 최초 수능실시(1994년도 입시. 연 2회 실시).
 


말 그대로 엑스세대 열풍이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같은 고딩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죠. 이 시기에 방영된 드라마 속 이병헌이 절 건축의 길로 인도(?)합니다. 수능이 처음 실시되었는데 1,2차 난이도 조절실패로 한바탕 난리가 났었죠. 결론은 연 1회로 축소. 
 


우리지역(모 광역시) 고등학교 전부가 저희 때부터 우열반을 실시했습니다. 철저하게 성적순으로 전 학년을 A,B,C 세 등급으로 나누어 버립니다. A반은 서울상위권 본고사 대비반, B반은 중위권 수능반, C반은 나머지들.... 같은 반이지만 수업은 이동식 수업이었습니다. 물론 교재도 수준별로 달랐습니다. 지금 이런 학교가 있으면 사회면에 날 법도 하지만 그때는 조용했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참 비인간적이었던......
 


1994년 - 마지막 승부 (MBC 장동건,심은하), X파일 첫방송 (KBS), 김일성 사망, 성수대교붕괴, 아현동 가스폭발, 1995학년도 수능(연1회로 변경-전년 난이도 조절실패)
 


참 다사다난 했었던 1994년이었네요. 우리세대가 구체제의 혜택을 받은 마지막 세대이자 구체제의 추악함을 똑똑히 본 첫 세대가 아닐까 하네요. 마지막 승부, X파일의 첫방송...아주 죽음이었습니다. 슬램덩크와 마지막 승부로 농구인기가 최고 절정이었죠. 남자들 대부분 농구화 착용.
 


1995년 - 삼풍백화점 붕괴 , KINO 창간, 대구지하철 가스폭발사고, 모래시계 열풍, 1996학년도 마지막 대학별본고사실시(이후 폐지).


역시 최악의 한 해였습니다. 말이 필요 없죠. 구체제 추악한 모습의 결정판이라고나 할까요. KINO가 창간하면서 바로 스크린, 로드쇼에서 KINO로 갈아탔습니다. 고3때라 모래시계는 못봤네요...나중에 봤지만..
 


1996년 - 고등학교 졸업, 대학교 입학. 삐삐. HOT 데뷔, 남자셋 여자셋 (MBC), 김광석 자살, 서지원 자살, 노수석 사망(연대 법학), 815 연대항쟁, 노동법 파동, 북한 잠수함침투사건. 
 


연초부터 연예인들 자살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특히 꽃미남 서지원의 자살은 우리세대 여자분들에게 큰 충격이었죠. 김광석은 제 바로 윗세대에게 충격이었겠고. 
 


고등학교 때 선망의 대상이었던 삐삐를 드디어 구입합니다. 1010235, 1004, 8253 자주 쓰던 숫자표시였죠. 더 있었는데 다 까먹었네요. 생각이 안나요. 
 


드디어 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고향집을 떠나 서울로 유학 왔습니다. 주택 200만호 건설신화(?)와 이병헌이 드라마에서 보여준 건축학부생의 ‘졸’ 멋진 모습에 홀딱 빠져 우수한 성적(?)으로 건축학부에 입학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유사학과 통폐합으로 인한 학부체제 초창기의 희생자였죠. 이 시기에 각 학교마다 ‘학교 발전 비전’이라는 것을 앞다퉈 선포합니다. 그 비전이라는 게 학교건물 몇 개 더 신축한다는 거였죠. 그때부터 캠퍼스의 공사판화가 시작됩니다. 결론은 등록금 폭등.. 학부제 초창기라 말 그대로 ‘개판오분전’이였습니다. 몇 개의 학과를 준비 없이 통폐합하고 나니 커리큘럼이 꼬여버린거죠. 95학번이랑 96학번이랑 커리큘럼이 다르고 전공학점비율도 달라져버리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었는데 복학하고나니 짜증이 확 밀려오더라는..



이전 학과들은 학과들 나름대로 밥그릇 챙기랴. 애들은 뽑아놨는데 준비는 안 되어있고. 학부 1기 95학번들은 열 받아서 대부분 군입대했고 96학번들은 완전 ‘나가리’... 꽃 같은 새내기 시절을 94,95학번 다 건너뛰고 90,91,92,93 예비역 아저씨들이랑 같이 다니는 불상사가 발생합니다. 학부회장도 1명이 아니라 건축학과, 건축공학과 별로 따로 뽑아 2명인 웃지 못할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나마 인원수 적은 우리학부는 다행이고 다섯 학과가 통합된 전기,전전, 제어 이런 학부는 같은 학번끼리 얼굴도 모르는 모래알 학부로 재탄생하게됩니다.



아무튼 학년별 대면식도 건축학과, 건축공학과별로 따로 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했고 학부엠티도 따로 갈 뻔 했었네요. 가장 즐거울 새내기 첫 두 달을 이리저리 끌려다니느라 정신없이 보냈습니다.
 


각 학부별로 개판인지라 동기 대부분이 동아리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전 기숙사 룸메이트 형의 꼬임으로 찾아간 게 노래동아리였는데, 알고 보니 민중노래패였네요(그런데 오디션을 왜 대중가요로 봤을까요?). 동아리에서 나름 즐겁게 한 학기를 보냅니다. 여차여차해서 한학기 무사히 마치고 농활 갔다가 고향집으로 고고싱. 



문제의 96년 8월, 범민족대회



옥상의 학생들과 대치한 전경들.

김영삼 정권이 연대에 학생들을 가둬버리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물론 저희 동아리 학우들도 대부분 갇혀버리죠. 저를 포함해서 몇 명이 갇히고 동아리 전원이 갇힙니다. 여기서 문제는 가장 큰 희생자가 새내기들과 여학생이었다는 겁니다. 같이 간 동아리 사람들 중에 제 동기 대부분이 불구속되었고 한명은 구속까지 되었습니다. 김영삼은 TV에 나와서 연대 가서 쇠파이프 들고 생난리를 치고...


여기에서 인식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연대에 있었던 자와 없었던 자. 연대에서 빠져나온 자와 남은 자. 데리고 갔었던 선배들과 따라갔던 새내기들..또 진압당시 현장에 있었던 여학우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아닌 ‘없었던 자의 슬픔’과 ‘빠져나온 자’의 슬픔을...느껴야 했습니다.

가을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학생회관에서는 연대진압 장면이 줄창 상영되었고, 구속학우를 위한 바자회가 열렸고, 재판참관으로 바쁘게 생활했습니다(결론은 ‘학고’ 맞고 군대가는 것이었지만).



가을학기는 패배감과 허무함 속에서 시작한 것 같습니다. 동아리 특유의 끈끈하던 유대감도 희미해져 버린 것 같았고, 선배들과의 관계는 뒤로 하더라도 동기들 간의 관계도 처한 상황에 따라 갈리더군요. 선배들을 옹호하는 자와 비난하는 자. 그냥 눈물 흘리는 자.. 조용히 떠나는 자와 남는 자.


경찰에 진압당한 후 학생들이 끌려나가고 있다.


갓 입학한 새내기가 뛰어 넘기에는 너무나도 높은 벽을 만나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지금 다시 곰곰이 생각해도 답은 안나오네요. 동아리방에서 불 꺼놓고 조용히 흐느끼던 여자 동기녀석 얼굴이 새삼 떠오르네요. 


 
결론적으로 엑스세대로 대변되는 사치, 향락이나 캠퍼스의 낭만은 96년 8월을 기점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물론 제 기준으로다가....1996년도 한총련 의장님은 뭐하시려나? 한 번 찾아봐 주세요.


1996년 연대 사태 당시 진압된 학생들이 포승줄에 묶이고 있다.



1997년 - 군입대, IMF, 김대중 당선



1996년의 쓰라린 기억을 뒤로 하고 ‘학고’와 함께 입대합니다. 그런데 이런 제길...전경차출.. 완전 드라마 찍습니다. 경찰학교에서 연대집압장면을 다시 보여주더군요...정반대의 입장에서.. 쇠파이프에 쪼개지는 방패와 터지는 화염병. 끌려가는 대원들...여기저기서 한숨소리와 함께 욕설이 튀어나오더군요. 이 프로파간다의 진수를 맛 본 여러 명의 동기들이 전의(?)를 불태웁디다. 물론 저도 순간적으로 두 주먹 불끈(인간은 참 단순합니다).
 


단군 이래 최대의 국난, 메가톤급 핵폭탄이 한반도에 터집니다. IMF. 김영삼이 거덜낸 대한민국을 김대중씨가 이어 받습니다. 군대에 격리된 상태라 세상물정 모르고 무덤덤한 상태였습니다.
 


1998년 - 나라살림 거덜, 건설회사 줄도산, 금모으기, 박찬호, 박세리, 노동자 파업, 딴지일보 창간, 스타크래프트 출시. 
 


노동자 파업의 절정기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전국 방방곡곡 안가본데가 없네요. 결론은 노동자 아저씨 쇠파이프 맞고 경찰병원행.. 이후 아직도 세상물정 모르고 무덤덤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1999년 - 군대 제대, 동창찾기 열풍(아이럽스쿨,다모임), 다음 카페 열풍, 다단계광풍.

아이럽스쿨인지 아이럽동창인지 아무튼 열풍이 붑니다. 저도 몇 번 만났는데 아이럽동창 단계까지 못가고 학교만 줄창 사랑했었던 기억이.. 시기가 시기인지라 다단계 광풍이 휘몰아 칩니다. 물론 저에게도 다단계의 마수가...학교 친구 중 한 놈이 알바자리 있다고 연락을 했었는데 알고 보니 다단계...그 놈한테 걸려든 동기 놈이 한둘이 아니더군요...
 


2000년 - 복학



새천년을 맞아 새로운 기분으로 복학하려했으나 엄청 뛰어버린 등록금고지서를 보고 눈알이 뒤집혀버립니다. 복학 후 만난 학부선배들이 자기들처럼 피 보지 말고 수능 다시 보라고 적극 권유합니다. 실제로 몇몇이 수능을 다시 보고 의대나 약대 진학해버립니다(독한 놈들. 부럽당). 운동권 동아리는 거의 다 몰락했고 1학년 때 본 총학 선배들이 그때까지 학교에서 운동 중이었습니다.



여차여차해서 졸업과 동시에 취업했는데, 노무현이 ‘전 국토의 공사판화’를 해준 덕분에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저는 후배들 앞에서 ‘이 직업도 할 만 하다. 열공하라’고 격려하게 됩니다.



노무현 후반기로 가면서 좀 기우는가 싶더니, 40년 삽질 ‘쥐박 선생’ 당선되면서 대운하가 선포됩니다. 우리 회사는 제2의 창업을 선포하고 저도 은근 기대를 걸도 다시 한 번 학교후배들을 독려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젠장, 2008년 회사는 휘청하고 펀드는 반토막나고 결혼자금은 굿바이(차라리 솔로인 게 속편함)입니다. 올 송년회도 불참예정.



(2000년 이후 중요한 일은 다음 정도인 것 같습니다.) 

 
2002년 - 월드컵, 노무현 당선
2003년 - 대구지하철 화재사고, 대학교 졸업, 취업, 청계천 복원 실시, 카드대란
2004년 - 대통령 탄핵, 뉴타운 실시
2006년 - 부동산 폭등
2007년 - 펀드 열풍. 이명박 당선
2008년 - 나라 전체가 휘청



글재주도 없는데 간만에 글을 쓰려니 머리가 띵하네요.. 제 과거를 총정리 한다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은.. 나머지 년도는 저번에 썼던 글이랑 비슷합니다. 1996년도 추억에 너무 심취해서 갑자기 소주가 땡기네요.. 1996년도 이후의 기억은 어찌된 일인지 희미해져있네요. 역시 1996년 8-15의 기억은 내 인생의 트라우마인가 봅니다.


'298세대 아이콘 100'은 <독설닷컴>의 야심작입니다.
6개월여에 걸쳐 100편 내외의 글로 298세대를 총정리해보려고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리고, 기고 대환영입니다.  

2008/12/06 - [298세대 아이콘 100] - 어느 90학번의 기억 속에 남은 1980년대의 잔상
2008/12/03 - [298세대 아이콘 100] - 386세대와 88만원 세대 중간의, 298세대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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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qqq 2008.12.08 08: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기가 처한세대가 자기가 처한곳이 젤힘들어 뵈는거다.. 요즘봐라 80년대초반 세대들 봐라.. 요즘 졸업하고 막막한애들 한둘이아니다. ㅉㅉ 그리고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는 편안한 세대인줄아냐?

  3. qqq 2008.12.08 08: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연대사태 할때 한총련 진짜 싫었는데 -_-;;; 한총련 망해라 한총련은 한국사회에서 암적인존재.. 전경들 쇠파이프로 맞아서 골로간사람들은 생각안나나보지?

  4. 찬찬 2008.12.08 08: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각 시대별로 낀세대는 존재했지만 96학번의 경우는 특히 특수한 학번이라고 볼수가 있습니다. 나이도 아니고 96년도에 대학에 입학했던 사람들만을 말하는것이죠.. 76(재수). 77년생이 대다수라 하겠습니다. 96년도를 기점으로 대학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95까지는 먹고놀자 술과 데모가 대학생들의 낭만이었다면 97년부터는 집회는 거의 범죄취급을 받을정도였죠.. 선배와 후배사이에서 갈팡질팡했던게 96학번입니다..

    그와 동시에 70년대 중후반생들의 고달픈 인생역정을 같이 경험한 너무도 빠른 변화와 함정에 허우적대던 시기였죠.. 대입때는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뀐 시험제도로 인해.. 또 군시절에는 가장 변혁이 심했던 아이엠에프.. 군제대하고 나서 피씨방과 핸드폰을 알게된세대.. 복학해서는 카드대란 또 이어진 2002월드컵..

    특히 96학번(76,77생은)은 96년 8.15까지 시대의 흐름을 이끌어가던 선두주에서 그이후 관망자, 끼인자, 중도적인자가 될수 밖에 없었던 시기인것이죠..

  5. 이시종 2008.12.08 09: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96학번입니다. 정말 동감되는거 많네요. 세대가 같다는게... 연대사태때도 있었죠..
    근데 댓글중에서 무슨 96학번이 저주받은 세대니 학번이니 하는데 사실 96학번이 뭘. 90에서 91학번 선배들이 97년98년 졸업반되어 IMF땜시 매일 소주잔기울이며 힘들어 했는데 사실 96학번이야 1학년 2학년 마치고 군대다녀온 후 정신차리고 졸업할때쯤이면 사실 취업할만했죠. 재수좋은 학번이랄수야 없지만, 나쁘다고 까지야. 그리고 댓글중에 그 연대때 1학년들은 선배들의 속임수 (그냥 총학 출범회만 간다. 해오름식 간다.) 뭐 이런식으로 한 3시간하면 끝날듯이 말하다가 결국은 2일3일을 학교에서 자고 거리에서 ... 운동권이 뭔지도 잘모르면서.. 멋도 모르고 데모란거 할 때였죠.

  6. Favicon of http://kimjh.net BlogIcon 바보온달 2008.12.08 1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헤효~~~~전...96년 연대사태때...전경이었습니다..연대 정문 앞에 있어지요....';;;
    .
    .
    .
    중.고등학교 다닐때는 교과서가 바뀌고...고3때는 수능이라는것을 처음 보게 되었지요...

    육군 지원 입대 했는데..훈련소에서...전경으로 차출되고..;;;

    전역후에는 취직한지..한달후에 IMF 라는 것이 나오게 되고...;;;

    어뜨케 보면..94학번(75생)들이 많이 꼬인거 같아요..

  7. 최악은 역씨. 2008.12.08 11: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누구나 자신이 가장 힘들었다 이야기 하겠지만,
    역씨나...
    94학번 앞에서 학번운 사회운 운운하는 건,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격이죠......^^

    암튼, 힘든 시기들 잘 버티시고, 모두 행복하게 사시길...
    언젠가 좋은 결과 있을 겁니다.
    모든 것은 역사로 기록 될 테니까요.
    심지어는 실패해 보이는 촛불집회나 그에대한 공권력의 대응들도,
    나중에 좀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평가되겠죠.

  8. 2008.12.08 1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9. 각자 2008.12.08 2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솔직히 각자 다들 자기 세대들이 힘들었다고 어려웠다고 생각하겠죠.
    어차피 누구든 좋기만 한 세대는 없는데 너무 힘든척한다 너넨 조용해라 이러시니까 좀 그렇네요.

    • 맞습니다. 2008.12.09 1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냥.. 잊고 지냈던 기억들을 떠올려 보는 거지요. 그 과정에서 그 기억들이 발전적으로 정리될 수 있으면 좋고..이 글들이 내가 가장 힘들었다 하소연 하고자 하는 건 아닐겁니다. 다만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힘들었다 위로하는 것이고.. 이슈화 되고, 기록으로 남겨지는 게 반갑고.. 그런 거겠지요..

  10. 2008.12.09 01: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1. 96학번으로서 2008.12.09 09: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은 부분에서 옛 추억이 떠오르게 만드는 글이네요.
    사실 96학번이 좀 어중간하지요.
    대학1학년때는 삐삐가 지금의 핸드폰마냥 대부분의 학생이 갖고다니는 통신수단이었는데
    제대하니 핸드폰을 대부분 갖고 다니기 시작했지요. 군대에서 후임병에게 pc방이란걸 듣고 인터넷이 대중화됐다는 걸 알게되었고, 군대에서 2년2개월을 보냈기에 imf는 전혀 실감을 못했고. 졸업할때쯤 되니 취업은 예전에 비해 훨씬 어려워졌고.
    생각해보면 항상 어떠한 과도기에 있었다는 느낌입니다. 과거와 현재 사이에,현재와 미래 사이에 존재하는 그래서 정체성에 의문이 드는 뭐 그런 거 같습니다.
    90년대 학번이 대체적으로 과도기 세대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12. 97학번이요. 2008.12.09 1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컴퓨터랑 친해서 통신의 혜택을 많이 봤지요. 다들 아실것 같은데. 연대항쟁을 지지 하는 사람들은 "항쟁"이라 칭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사태"라고 칭합니다. 저는 그때 고딩이였지만 통신을 통해 사정을 좀 알게 되었죠. 느낀 바는... "조중동은 믿을 수 없다"였습니다. 언론을 믿을 수 없게 됐죠. 결국 저는 언론에 쇄뇌된 동기들과 후배들을 각성(?)시키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고 제대로 낀세대가 되더군요. ㅎㅎㅎ

  13. 장작불 2008.12.09 12: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장에 있던 96학번입니다..
    학교 마친 후 늦은 나이에 군에 입대해서, 늦은 나이에 사회에 나왔습니다..
    지금은 뭐.. 그냥 '남의 돈 먹고 사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96학번은 존재감이 별로 없습니다..

    '늬들도 그런 거 했냐?'라고 묻는 선배들과
    '왜 그 정도 밖에 못했냐'라고 묻는 선배들..
    '왜 그런 거 하셨어요?'라고 따지는 후배들과
    '왜 그 정도 밖에 못싸웠어요'라고 따지는 후배들..

    '낀 세대'라고 이야기하는 건 그런 걸 말하는가 봅니다..

    댓글을 쭈욱 읽어보다가, 어느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 서성거렸다..'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되뇌어 봤습니다..

    메신저로 이 글을 몇몇 학교 동기들에게 보냈더니 이런 말을 합디다..
    '능력좋은 선배들과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 사이에 지금도 끼었다..'
    이 어찌할 수 없는, 어떤 흐름 앞에 그냥 오늘 하루도 따라가기 바쁩니다..

    96년 연대 안에 있는 기분입니다..

    자리를 만들어 소주한잔 하자는 제안이 몹시도 고맙습니다..
    그 때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너무도 공감이 많이 가는군요.. 꼭 뵈었으면 합니다..

  14. 쥬디 2008.12.09 1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맨위 사진의 바르케이트 뒤로 보이는 나.. 순간 정신이 멍~해졌습니다.
    마치 10년전에 잃어버린 일기장이 느닷없이 공개되어 버린 느낌이랄까..
    저사진속의 나는 지금까지도 죄인이라는 낙인이 찍혀있습니다.
    한국사회 근현대사에서 커다란 구심점이었던 학생운동의 명예와 역할에 오점을 남기고 위축을 초래한 장본인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언론에서 앵무새처럼 되뇌이던 폭도라서, 이적세력이어서가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패배주위에 빠져 떠나가는 이들을 방관하고 이후 학번들을 결속하지 못한 책임때문입니다.
    당시 아무런 결정권도 없고 의견을 주장할수도 없었던 새내기였지만 96학번이라는 이유로 그 책임을 짊어지어야만 했습니다. 당시의 정치적상황에서 파생된 언론의 의도적인 흠집내기, 시대적상황에서 파생된 집단에서 개인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사조, 경제적상황에서 파생된 이기주의.. 여러가지 좋지않은 상황들은 학생운동의 위기에 기름을 끼얹어 놓은 상태였는데도 말입니다.
    그 시절 이후 짊어진 짐이 너무 무거워 방관자로 일탈자로 살아가지만, 역사와 현실앞에 마냥 부끄럽기만 하지만, 그시절 뜨거운 피는 지금도 가슴한켠에 자리하고 있고 부조리와 불의에 대항해 떨쳐 일어날수 있는 잠재적 동력을 간직한 마지막 세대, 96년 8월의 우리들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 세월이 흘러 2008.12.19 0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위에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글을 남겼습니다.
      님의 글 보니까 또 다른 생각이 드는군요.
      새대가 변하면서 그들만의 호소력있는 무언가가
      있을거라 생각듭니다.
      밝은 내일, 또 다른 내일이 있을거라 간절하게
      생각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15. Favicon of http://lschan.tistory.com BlogIcon 靑志器 2008.12.09 1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저는 94학번입니다. 그 때의 기억이 다시 나네요. 서초서에 끌려가서 맞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흥분한 전경들이 잠 안재우고 위협을 가하기도 했죠.
    연대항쟁이 298세대에게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었다는 내용이 매우 흥미있었습니다. 아직 운동의 언저리에 있는 저 역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우리세대가 그래도 청소년기에 IMF로 실직된 가장을 지켜 보았어야 했던 88만원 세대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연대의식이 있었고, 삶의 '가치'와 관련해서 고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봅니다. 소위 '단군이래 최대의 스펙'을 위해 아등바등거리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쓰다보니 그 분위기를 다음 세대에 연결시켜 주지 못했던 것이 다시 트라우마가 되는 것 같군요. 허~

  16. 시루 2008.12.28 2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95학번입니다. 국문학과였는지라 학부제는 98년도 부터 시행이 되었었죠. 과내 활동으로 '사회과학연구모임'을 하면서 '시사저널', '말'지를 읽으면서 댓거리를 하고,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
    연대사태는 직접 가진 않았지만, 친구들이 그 안에 갇혔던 터라 너무나 잘 들었죠. 정말 그 이후 학생 운동은 싹 자취를 잃어버렸습니다.
    95년도 학내 투쟁에서 8000명 정도가 모였던 기억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는 정말 싹~~
    그러면서 너무도 빨리 시간이 지나버린 것 같아요.
    pc통신세대에서 급작스런 인터넷 세대로.
    한글 2.0에서 지금은 한글 2007....
    dos세대에서 윈도우로....

  17. Bogus 2010.06.13 0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95학번입니다. 희미하게..잊고 있었던 오래된 기억이 갑자기 주르륵 쏟아지는군요. 3월말 등록금투쟁 종로집회에서 노수석씨(열사라고 해야 하나요?) 아니, 단과대는 다르지만 학교 동기가 시위도중 사고를 당합니다. 그날 시험이 없었다면, 혹시 내가 되었을지도 모를 그 사건 이후로, 나 뿐 아닌 많은 95 동기들이 거리로 거리로 나섰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날이 갈수록 격화된 시위의 끝이 바로 연대사태였죠. 그 이후로는 학교에 백골이 주둔하고, 도서관을 침탈하고, 페퍼포그가 정문 안에서 난사질을 하는, 과연 이게 96년이 맞나 싶었습니다. 정말 억울하고, 분해서 울기도 했었구요. 글쎄요. 총련 주류의 연대항쟁이 과연 정세적으로 옳게 행동했는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찌되었든 한총련은 북한을 추종하는 일부 과격학생그룹이라는 프로파간다가 성공하게된 계기이기도 했죠.

  18. 김진영 2015.08.16 0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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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Favicon of http://WWW.NAVER.COM BlogIcon 98학번 2015.08.16 09: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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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Favicon of http://WWW.NAVER.COM BlogIcon 98학번 2015.08.16 0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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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96학번 2019.04.14 02: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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