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시사IN 기자, 여행감독 1호, 재미로재미연구소 소장. 이메일 gosisain@gmail.com 트위터 twitter.com/dogsul 페이스북(페이지) facebook.com/kojaeyoul 독설닷컴

Category»


Archive»

Notice»

« 2020/8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08-09 17:45

386세대와 88만원 세대 중간의, 298세대를 아시나요?

298세대 아이콘 100 | 2008. 12. 3. 08:28 | Posted by 소셜미디어의 촌철살인마 독설닷컴

 





<독설닷컴>을 통해 본격적인 세대론을 한 번 펼쳐보려고 합니다.
이름하여 298세대입니다.
1990년대 학번, 바로 제가 속한 세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오랫동안 구상한 것인데, 이제 본격적으로 제기해 보려고 합니다.



왜 298세대냐구요?
간단합니다. 386세대에서 88만원세대를 뺀 숫자가 298세대입니다.
298세대라는 말에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1998년부터 제2의 인생을 살게 된 세대입니다.



그럼 이들의 제1의 인생은 어땠을까요?
무척 순조로웠습니다.
1970년대, 아버지 세대는 경제 성장을 이루어주었습니다.
1980년대, 형님 세대는 민주화를 이루어주었습니다.
즉,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자유를 만끽한 세대입니다.



386세대와 88만원세대에 가려서
조금 존재가 없는 세대이기는 한데, 여하튼 그런 세대가 있었습니다.
그 세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제법 살만한 시절에 대학을 다녔습니다.
어학연수와 배낭여행이 일반화 되었고,
학생운동 부담이 없어서 영화 등 문화에 천착했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1990년대는 풍요와 번영의 시기였습니다.
우리가 대학에 들어갈 무렵, 세상은 우리를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신세대,
혹은 X세대,
혹은 오렌지족,
세상은 우리를 ‘신인류’로 대접했습니다.



298세대는 처음으로 ‘우리’가 아닌 ‘나’에 천착한 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획영화의 시발을 알린 <미스터 맘마>와
트렌디드라마의 시작인 <질투>와
그리고 서태지,
대중문화가 폭발했습니다.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았습니다.



우리는 ‘생산’이 아니라 ‘소비’에, ‘건설’이 아니라 ‘향유’에 익숙한 세대입니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간 연예인들은 롱런하고 있습니다.
이영애 장동건 고현정(심은하도 돌아오면 좋을텐데...)...
아마 이들은 마흔까지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독한 소비세대였습니다.
이들이 거쳤던 광고의 궤적을 보면 우리가 복 받은 세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핸드폰과 이동통신 카드 대형냉장고 브랜드아파트...
우리와 함께 가는 덕에 이들도 롱런할 수 있는 것이지요.



대중음악으로 우리를 분류하면
서태지와 HOT 사이의 세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로 분류하면 키노에서 시네21 사이의 세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마음껏 소비해준 덕에, 그것이 차고 넘쳐서 한류의 기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좀 도식적으로 세대 구분을 하면 이렇게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춘기와 사회생활 초입의 사회 상황에 따라
경제에 오리엔테이션 되어 있는 세대냐, 경제 발전이나 경제 위기 등...
정치에 오리엔테이션 되어 있는 세대냐, 독재 타도나 민주주의 등...
문화에 오리엔테이션 되어 있는 세대냐, 소비와 대중문화 등...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맨 앞자리에는 산업화 세대인 경제개발 5개년 세대가 있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장기집권을 했듯이 이 세대도 아우르는 범위가 넓습니다.
1960년대 1970년대 대학을 다녔던 세대가 이 세대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세대는 먹고사는 문제, 즉 경제에 주안점을 둔 세대였습니다.



그 다음에 민주화 세대인 386세대가 있습니다.
이들은 세상에 대해 활발하게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그 시작은 엄혹했으나, 그 나중은 심히 창대했습니다.
문민정부가 들어섰고, 국민의 정부를 거쳐, 이들이 주축인 참여정부가 구축되었습니다.
지난 대선 총선까지 이들은 패배를 모르는, 승리의 세대였습니다.



그리고 이들 뒤에 문화 세대인 우리 298세대가 있습니다.



우리 다음 세대 특성을 보면
경제세대-정치세대-문화세대, 이 사이클이 다시 반복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다음에 IMF 세대인 88만원 세대가 등장합니다.
이들은 사춘기 시절에 IMF를 겪었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는 비정규직 일반화를 겪었습니다.
IMF 트라우마를 가진 이들이 다시 청년 실업 악몽까지 겪게 된 것입니다.
움츠려들 수 밖에 없는 세대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뒤에 다시 정치 세대가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촛불 세대입니다.
미선이 효순이 촛불, 탄핵 촛불, 광우병 촛불...
386세대의 자녀들이 중고등학생이 되면서 자기 발언을 확실하게 하는 세대가 나타났습니다.
‘386플러스’ , 혹은 ‘386 시즌2’ 세대가 등장한 것입니다.



아래 위 세대와 비교해서 298 세대의 특성을 구분하면 이렇게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경제 개발 5개년 세대’가 이룬 경제 발전 덕분에 우리는 소비 세대가 되었습니다.
명품을 본격적으로 소비하는 세대가 우리 세대일 것입니다.
‘386 세대’가 이룬 민주화 덕분에 우리는 활발한 토론 문화를 가진 논객 세대가 되었습니다.
학생운동 리더가 아닌 PD통신과 인터넷 공간의 논객으로 활동하며 우리는 활발하게 자신의 주장을 알렸습니다.
88만원 세대처럼 절망적인 원경험이 없기 때문에 낙관적입니다.
이 세대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보려고 합니다.    



이 대형 기획을 하게 된 계기는
1999년 월간 <말> 5월호에 실린 ‘386 리더 1천명’ 부록입니다.
올해 초 이와 관련해 386 기획 기사를 썼었는데, 우리 세대 이야기는 내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386리더 1천명’은 지금 <오마이뉴스> 대표인 오연호 기자가 기획한 것이었습니다.
(내년 5월에 <오마이뉴스>든 <말>지든, 후속편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저는 2009년 5월까지 6개월 동안,
‘298세대 아이콘 100’을 연재하려고 합니다.
(혼자 힘으로 안 되면 도움을 받아서라도...) 



‘리더’가 아니라 ‘아이콘’이라고 한 이유는,
우리에게는 ‘리더’라는 말이 안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리더가 필요 없는 세대를 살았습니다.
‘리더’가 아니라 ‘아이콘’의 영향을 더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스스로 빛을 발산하는 ‘아이콘’이 된 그들을 찾아나서려 합니다.



우선 떠오르는 이름입니다.



강풀 (만화가)
김용민 (시사평론가)
김유식 (디시인사이드 대표)
김진혁 (EBS PD)
김태호 (MBC PD, <무한도전>)
문소리 (진보신당 지지 연예인)
백은하 (전 시네21기자, 전 매거진t 편집장) / 함께 매거진t에 있었던 강명석씨도. 
변희재 (인터넷미디어협회 정책위원장)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탁현민 (p당 대표)



한명 한명 만나든 이메일을 주고받든, 메신저를 주고받든,
교신해서 이들의 생각을 전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적절한 분을 추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전 댓글 더보기
  2. 저도 추천 2008.12.07 2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래곤 라자의 작가 이영도(93학번인가 그렇습니다)
    축구 해설가 서형욱(94학번입니다)
    컬럼니스트 김현진(80년대 초반 생이라 좀 안 맞을지도^^)

  3. 2008.12.08 0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멋진녀석 2008.12.08 0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96학번입니다. 제가 입학했을때 등록금이 200이 넘어간던 첫학번이었고
    이것때문에 시위도중 연대 법학과96학번 노수석군이 유명이 달리했습니다.
    그때 전경무서운거 경험하고 시위끊었습니다...제친구중엔 연대가서 망가진
    녀석도 꽤 있었습니다. 지금 뭐하는지...
    그리고 학교들의 건설열풍으로인행 0교시수업이 있었습니다.
    세상에 고등학교에서 하던걸 대학교에서 또 할줄이야
    이 0교시수업은 2000년도에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저희학교는 학부제가 97년도부터 시행되어서
    선배는 있는데 후배가 없습니다.
    어차피 그때 선배들 지금 연락되는 사람도 없지만
    동아리 선배는 만나지요(그때 최고 인기였던 컴퓨터동아리
    이동아리 작년에 주식동아리로 바꾸자고 해서 형들 얼굴 일글어지던데)
    96년도에 윈도95가 나오면서 PC통신을 밀어내고 인터넷이 본격화되었고
    고등학교때는 농구가 최고 인기였습니다
    슬랭덩크 마지막승부 농구대잔치등등
    모두 농구화를 신고다니고 농구유니폼을 입고다니고...
    우리때 고등학생등 반팅 미팅 헌팅등 각종팅이 유행이었습니다
    미팅 엄청했었는데, 옛날생각 많이 나네요
    글이 두서가 없네요
    고재열기자님의 블로그를 항상와서 읽고 있는데
    처음 댓글달고 글쓰려니 이상합니다. 댓글 잘안쓰는데
    하여튼 기획하신거 잘 진행해 주시구요 우리 96학번도
    잘써주세요

  5. 저는 2008.12.08 00: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386이 "대선 총선까지 패배를 모르는, 승리의 세대였"다는 말에 이의제기 합니다. 그건 눈에 드러난 모습이 그러하다는 거지요. 그 승리는 가짜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패퇴한 것이고 저는 노무현씨가 대통령이 되고나서 그 측근으로 나타난 인물들을 보았을때 부터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진짜 정치적 변화를 이끌어낸 씨앗이 된 이들은 희생되고, 묻히고, 드러나길 원하지도 않았고 지금도 묵묵히 있습니다.

  6. 김진혁님의 2008.12.08 0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황이 궁금합니다. 그의 글도. 지식채널e 팬 올림

  7. 하늬 2008.12.08 0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잘것 없는 어느 96학번의 평범한 이야기
    95년 수능 시험.
    94, 95학번들이 쳤던 수능을 바탕으로 고1 때부터 타겟은 수능과 본고사로 맞춰짐. 바로 윗 학번까지 실시했던 고등학교 주초고사가 우리 때부터 없어졌고, 1,2학년 나름 열심히 공부해서 지방 고등학교지만 상위권에 있었고, 서울 명문대(SKY ㅡ.,ㅡ;;)를 목표로~~
    고3~~ 1학기 열심히 공부해서 나름 KY대(S빼고) 특차 지원가능 이라는 부푼 꿈을 꾸게됨.
    여름방학… 열심히 논 나머지 지방 국립대 공대 수준으로 강등~~ ㅡ.,ㅡ;; 방학 끝나고 죽어라 만회하여 다시 1학기 성적으로 복귀.
    막상 수능 당일. 갑자기 어려워 졌다는 보도와 함께 내 언어영역 점수는 20점 이상 곤두박질~~ (예상보다 30점이 밑돌았다는.. ㅡㅜ)
    딱 하루 정도 재수를 생각했으나 바로 포기하고 본고사 준비해서 지방 국립대 전기공학과 입학. (젠장)
    ‘우리들의 천국’, ‘내일은 사랑’ 등을 보며 꿈을 키웠던 캠퍼스 생활 시작~~~
    96년 대학 새내기
    입학 직전 고등학교 선배에게 전화가 와서 만나러 나가고, 딱히 이유도 없이 동문써클 가입.
    동기들과 어울려 노는데 정신 팔림. 낮에는 대충 수업 듣고, 저녁에는 술 마시러 가거나 과외 뛰러 다님. 정말 아무 목적 없이 열심히 놀았슴. 과 행사, 동문모임 행사 이런거 절대 안빠지고 노는 자리 찾아다니고. 새내기라는 명목하에 어딜 가나 환영 받고. 참 열심히 논 것 같음. 과/동문 MT, 농활, 지리산 등반, 신입생 환영회~~~ 아오~~~
    아침마다 정문 앞에서 마이크 들고 거리 홍보하는 학생회장, 부회장을 봄. 하루는 사복 경찰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줘패고 밟으면서 서있던 선배, 동기들 끌고가는 것을 목격. 충격이었다는…
    여름인가? 연대사태라면서 학교가 떠들썩 했던 것이 기억남. 연대 95학번 노수석 사망 소식 들리고, 학교 곳곳에 근조화 걸리고. 경찰이 그렇게 했다는 사실과 그런 상황으로 밖에 갈 수 없는 사실에 분개했지만, 그 의미를 나는 잘 몰랐음~~~
    학점 어영부영(2점대라는… ㅡㅜ) 받고 어영부영 2학년. 젠장~~
    97학번 들어오다.
    처음으로 후배가 들어옴. 후배들과 엄청 재밌게 놈… 제일 이쁜 후배랑 CC되고. 암튼 97년 1학기 연애면 연애, 술이면 술, 공부?(는 아니다… ) 정말 후회없이 재밌게 보냈음. 성적은 완전 바닥~~~ 컥~~~
    휴학을 하고 군대를 준비함. 기다리다 기다리다 12월에 입대함.
    군대~~
    12월 9일 의정부 306으로 입대함. 경기도 양주 26사단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훈련소 부모님 면회 마지막 기수가 됨. 자대는 수도군단 산하 51사단으로 배정. 경기도 안양 석수동에서 2년 2개월을 채움. (여긴 할 말이 많지만 생략함)
    제대와 함께 복학
    2000년 2월 8일 제대한 날. 부산의 집으로 가서 옷 갈아입고 먼저 제대한 친구들 만나러 학교 앞으로 감. 웬걸? 00학번 신입생 만나는 자리네.
    복학을 하고, 수업을 들으면서 멕스웰, 가우스, 라플라스 같은 넘들 때문에 수업 시간은 꿈나라의 시간이 되고.. ㅡㅜ 어쨌거나 복학생이기에 학점은 따야 하기에 모르면 스킵하고, 문제 풀다 막히면 그냥 외우고, 가끔씩 컨닝 페이퍼 만들다가 어느덧 외우고 있는 나를 보며 좌절하고… 아~~ 뭐냐 이게.
    도서관에 자리는 있지만 절반은 PC방에서 선배,동기,후배들과 있는 나를 발견하고, 포트리스,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2, 카운터 스트라이크 등 당대 최대 인기를 끌었던 게임은 두루 섭렵하고 다녔던 나. 학점은 당연 좋게 나올 수가 없다. 겨우 3점대 만드는 수준…
    4학년이 되고 보니, 학점은 이미 거의 다 채웠더라. 01년 02년 선배들 보면서 취직이 너무 어렵다니 어쩌니 하는 말들을 들으면서, 나도 어렵겠거니… 뭐냐?
    취직보다 대학원을 선택함. 꼴에 연구직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대학원 결정.
    같은과 대학원을 어렵게 입학함. 안하던 공부를 하니 머리에 쥐가 옴~~ 정말 대학 입학한 이후로 최고 열심히 공부한 것 같음. 1년차 때, 당시 채원인원이 엄청나게 많았던 모 LCD 회사에 산학지원생 합격. 보험은 들었고, 여유 있게 공부하며, 쉬며, 2년차에 취업을 준비함.
    2년차 말에 생각지도 않았던(원서도 넣지 않았던) 회사에서 원서 넣고 면접 보라고 연락옴. 여유가 있어서 그런지 부담 없이 원서 넣고, 가볍게(?) 합격. 05년 1월에 입사.
    나름 L모 계열 회사이고 100대 대기업 안에 드는 회사라 울엄니 어깨에 힘주고 다니심. 사실 민망했음.
    입사해서 회사 선배의 소개로 한 여자분 만나고, 그냥 사귀다가 사고쳤음.(ㅡ.ㅡ;;;;;;;)
    엄니, 아부지한테 뒤지게 혼나고 결혼함. 결혼 당시 돈 모아논거 대략 천만원. 세상물정 모를 때, 엄니한테 용돈 50만원 빼고 다 맡겨서 그나마 모았음. 어째어째 결혼식 하고, 회사 사택에서 살게됨. 06년 3월 소중한 아들놈 태어남. 쥐뿔도 없으면서 마눌님한테 큰소리 치고 혼나면서 살고 있음. 오늘 아침에도 마눌님, 아들놈하고 뽀뽀하고 출근함.

  8. 99학번 2008.12.09 09: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 저희 1학년때는 선배들 따라 대학들와서는 놀자놀자 분위기였는데
    군대갔다오니 후배들이 학점관리에 열올리고 신입생때부터 취업준비하는거 보면서 참 적응하기 힘들엇던게 생각나네여

    그리고 우리 세데 아이콘 추천인물은 엔시소프트의 김택진사장이 아닐까여?
    90년말대말부터 온라인 게임이 생겻고 그중 가장 성공하고 지금도 꾸준히 유지하는듯하고여 우리세대부터 온라인게임이나 온라인쇼핑등에의 소비에도 한참 열올렷으니까여

  9. 내구름 2008.12.09 09: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딴지일보 팬더(이성주 94), 여기저기 과학 칼럼 쓰던 하리하라(최근엔 프레시안에서 봤구요 이은희95), DC 주식갤 일임투자회사(96 요놈 꽤 재밌음 ㅋㅋ)도 불러줘요
    그리고, 당연히 임요한이나 홍진호도 인터뷰 해야지요.. 스타크래프트의 아이콘인데요.

    그리고, dc 김유식 괜찮은데요.. 고졸 아닌가요?
    너무 대학에 치중한듯해요.
    당시까지는 실업계도 지금처럼 지리멸렬 수준은 아니었어요.

  10. Favicon of https://poisontongue.sisain.co.kr BlogIcon 소셜미디어의 촌철살인마 독설닷컴 2008.12.09 10: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선정님이 이메일로 보내주신 298세대 코드입니다.

    참고로 제가 얼핏 떠올려본 그 시대의 아이콘 몇 가지를 나열해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 장정일(햄버거에 관한 명상), 하일지(경마장 가는 길), 포스트모더니즘, 혼성모방(이인화), 타르코프스키, 동숭시네마텍, 씨네21, 영화아카데미 등등이 있네요.

    • 91학번 2008.12.09 14: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뭐 세대의 범위를 무자르듯 자를 순 없겠지만 조금 이해하기 힘드네요... 완벽하게 끼인 세대인 제가 볼 때 이 아이콘들은 90년대초, 즉 93~95힉번들이 중고딩이던 시절에 신드롬을 일으켰던 것들로 기억합니다. 이 아이콘들이 정점을 이루었던 것이 아마 박일문과 류철균 등의 소위 포스트모더니즘 소설들이 나왔을 때 같은데 94학번쯤 부턴 이들에 관심 없었을 것 같은데... 아닌가요?

  11. 96학번 2008.12.09 1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77년생 96학번입니다.

    거명된 분들이 전체를 대표한다기보다는 소위 '298세대' 중,
    진보성향을 띤 분들의 코드에 맞는 이름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만큼 정치와 사회에 대해 고민을 하고 목소리를 내왔던 분들로서 자격이 있겠지요.
    (저는 사회 문제에 별로 지식과 관심이 없습니다. 몇몇 분 시각에서 보면 안타까운 사람 중 하나이지만 실물경제 분야에서 회사와 국가에 가치를 창출하며 살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기획의 의도가 '298'이 아니라 '298-진보'는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포털사이트에서 링크로 들어와 이곳의 성격을 모르고 한 얘기라면 죄송합니다.

  12. 말이 나와서... 2008.12.09 1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느 세대나 그럴지 모르겠으나, 70년대 태생들, 90년대 학번들은 하나로 묶기가 힘듭니다. 대학입시제도로 보면 90년대초와 중후반으로 구분되며, 그들의 초중고 교육 분위기 또한 그로 인해 판이하게 다릅니다. 사회의 문화 코드를 분류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육과 시대 흐름을 예외시할 수 없다고 봅니다.

  13. 임경훈 2008.12.09 1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평론가 겸 SF 작가인 듀나DJUNA요~

  14. 파란혜성 2008.12.09 1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보니 왕가휘를 뺄 수가 없겠네요.

  15. Engineer 2008.12.09 13: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94학번입니다. 현재 IT산업에 종사하고는 있지만, 우리세대의 대표적인 것중 하나는 정보화 IT혁명이라고 싶습니다. 대부분 언급한 인물들은 대부분 넷을 빼고 얘기할 순 없겠고, 문화들도 넷을 빼고 얘기하기 힘듭니다. 여기도 마찬가지구요.

  16. 파란혜성 2008.12.09 14: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크라잉넛, 노브레인 등 펑크 문화를 이끌었던 이들도 재고해 볼만 하겠네요. 그런데 어떤 분이 지적하신 대로 한쪽으로 치우친 느낌이 드네요. 판타지 문학의 효시인 면에서 이영도 씨,
    축구 팬덤 문화의 선구자여서 서형욱 씨를 추천했는데 ㅎㅎㅎ

  17. 얼음물고기 2008.12.09 17: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95학번입니다.
    고1때 학력고사를 공부하고, 고2때부터 수능 공부에 우리때는 두번 보던 수능마저 한번으로 바뀌었죠.
    95년은 91년의 운동권의 실패가 그 마지막 발악(?)을 하던 시기였죠.
    입학하자마자 동아리 선배를 따라 갔던 종로의 집회에서 자욱한 최루연기속에 노수석이라는 연대의 95학번은 열사로 거듭나버렸죠.
    그리고도 한참을 95년도는 집회의 연속이었습니다.
    학교앞에서의 불심검문은 일상이었고 왕십리는 언제나 전경과 학생들이 대치중이었죠.
    종로에서 명동까지의 거리 시위들도 중고등학생 시절 테레비로만 보던 바로 그런 모습이었습니다.(음...이렇게 써놓고 보니 95년은 386세대들의 모습과도 일면 비슷하군요)

    96년은 조금 의외의 모습으로 다가 왔습니다.
    가정 형편상 휴학을 하고, 군대를 미루고 동아리 회장을 하면서 처음으로 참가해봤던 한총련 출범식...
    95년도 그렇게 공안정국을 펼치던 김영삼 정권은 처음으로 전주에서 있었던 한총련 출범식을 허가했고, 전무후무하게 전북도지사가 한총련 출범식장에서 한총련 출범식을 축하!했죠..
    한총련 출범식은 매우 평화적으로 아무런 사고 없이 끝났고,
    우리는 이제 마음껏 통일을 이야기 하고, 노동자를 이야기 하고, 보안법 폐지를 이야기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죠.
    그리고..8월...범민족대회..
    고향에서 아버지의 급작스런 병원행이 아니었다면 저도 그곳에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지난 한총련 출범식때의 그 평화스러움을 기대했던 학생들은 갑작스런 학교 폐쇄에 당황해 했고, 고향에서 테레비로 지켜보던 저는 순수하고 착했던 그 친구들이 폭도로 매도되는 현장을 지켜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영삼과 김대중 모두 테레비에서 학생운동의 폭력성을 개탄했고, 국민들은 함께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졌던 한양대에서의 프락치사건 등등으로 인해 운동권 학생들은 폭력과 비리에 쌓여버린 치들도 치부되었습니다.
    연대 안에서의 따뜻한 공동체의 모습은 친구의 후일담을 통해서만 알게 되었습니다.

    97년 군대를 가고, 그곳에서 핑클과 S.E.S에 열광했고, GOD의 어머님께를 되내여 불렀습니다. IMF로 기름을 아끼자며 밤 10시, 새벽 4시 두번만 보일러를 틀어 줬고, 온수는 저녁시간 딱 30분만 틀어 줬으며 심지어 돈가스는 튀기는게 아니라 쪄서 나왔습니다.

    제대를 하고, IT열풍, 벤처 열풍이 불면서 너도 나도 컴퓨터가 미래의 블루칩이라며 그쪽에 매진했고, 저는 그때 막 스카이러브나 세이클럽을 통해서 인터넷이란 무엇인가를 알아 갔죠.

    학교는 이미 운동권 학생회의 비리로 인해 "소리없는 2만의 아우성"이라는 소명 학생회의 열풍이 있었고, 학교 게시판은 똘총과 소명의 대결로 연일 불탔으며 고려대를 비롯해 한양대 등등의 학교에서 역사적인 비운동권 학생회가 세워 집니다.

    토익 열풍이 불었죠. 학교에서는 토익 특강이 개설 됐고, 토익 졸업 인증제가 도입되었지만, 전 다행이도 그 물결은 벗어 났네요.

    비운동권 학생회는 학교와 등록금인상에 대해 최초로~! 합의를 했고, 3월말에는 인상분과 합의된 금액에 대한 차액금 10만원 정도가 학생 개개인의 통장에 입금되었고 그날 학교앞 술집은 밤이 새도록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아, 복학하고 학교 다닐때는 학교 안에서도 신용카드 모집을 했죠. 신용카드 만들면 현장에서 돈을 만원씩 지워 주곤 했습니다. 저도 덕분에 몇 장의 신용카드로 돈이 궁할때는 현금서비스도 받아가며 사용했었죠.

    신용이란게 돈을 빌려 주는 걸로만 알았지, 그로 인해 돈을 못 빌릴 수도 있다라는 걸 알지 못하던 시기였습니다.

    졸업을 하고, 어영부영 취직을 하고...
    어느덧 33살입니다.

    가슴은 여전히 뜨겁다라고 생각하고,
    효순이 미선이 사건때에는 광화문의 촛불을 보고 다시 한번 가슴이 뜨거워 지기도 했고,
    월드컵의 열기 때에는 함께 밤을 지새며 거리를 다시 뛰어 다녀 보기도 하고,
    이명박의 당선을 가슴아파 했으며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멍청한 사람들이라며 욕도 해보지만,

    점점...
    생활속으로 천착해 갈 수 밖에 없는 회사에서는 대리, 가정에서는 가장이 되어 갑니다.

    오랜만에 298세대란 글을 보며 옛생각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Favicon of https://poisontongue.sisain.co.kr BlogIcon 소셜미디어의 촌철살인마 독설닷컴 2008.12.09 17: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돈가스는 튀기는게 아니라 쪄서 나왔습니다."

      이 부분에서 무지 씁쓸해지네요.

    • 원써퍼너타임 독설가 2008.12.09 2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 재밌게 봤습니다. 소소한 지적이긴 한데... 사실관계는 정확히 하려고요...
      노수석이 죽은 것은 96년 초였던 거 같네요.
      95년에 데모가 유독 많았던 것은 5.18특별법 제정 이슈 때문이었다고 기억하구요.

      나온 김에 더 덧붙이자면,
      5.18 특별법 제정 투쟁(물론, 운동권 주류는 특별법 제정운동을, 비주류는 특별법에 한정된 한총련 주류 노선을 비판했지만, 대체로 당시 투쟁은 특별법이었다고 회고됩니다.)
      은 결과적으로는 '성공적'인 투쟁이었습니다.
      특별법을 제정했으니까요.
      그런데, 줄창 데모하던중에 학교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다가 텔레비전에서
      ys가 소위 역사바로세우기 를 말하는 장면을 보면서,
      우리가 '승리'했다는 것을 깨달았던 기억은 굉장히 씁쓸했던 거 같습니다.

      그래도, 95년은 무언가 꺼림칙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승리의 기억을 가질 수 있었던 해입니다. 스스로는 떨떠름했지만, 최소한 남들에게는 "이것이 우리가 해낸 거다"식으로 말할 정도는 되었죠.

      96년 노수석이라는 친구의 죽음은, 저희 과에서도 짧지만 컸던 파고를 일으켰다고 기억합니다. 죽음이 있었던 날은 3월말 금요일이었고, 다음날 우리과는 총MT를 가기로 했었죠.
      MT를 가려고 조그마한 과실에 모였던 학생들 앞에서, 우리과 학생회장은 눈물을 흘리며 호소를 했고, 50-60명의 학생들이 함께 연대 시위(96 연대항쟁 말하는 거 아님다)에 합류했습니다. 그 후로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함께 시위를 위해 모인 적은 없었습니다.
      그 날 처음 데모에 나와서 최루탄에 눈물 흘리면서 투쟁을 외치던 1학년 친구들(96학번) 중 상당수는 다시는 데모에 나오지 않았고, 그 중 일부는 안티 운동권이 되기도 했던 거 같습니다.

      그 날은 90년대 중반학번이면서, 80년대를 동경했던 본인에게는,
      쇠락 직전에 반짝 빛나는 별똥별같은 하루였다고나 할까요...
      (제가 별로 비유에 능하지는 않군요...; )

      운동사적으로는 학생운동 쇠락에는 96년 연대도 컸고, 97년 한총련 사태도 컸지만,
      저한텐 그보다 더 조금 전이었던 그 날이 더 기억이 납니다.
      큰 계기가 아니었어도 이미 그렇게 되어 가고 있었고,
      그렇게 되지 않으려는 건가라는 희망을 하루나마 가지게 했던...
      (음....역시 80년대를 동경하고 있군요. 나는... 겉으론 아닌지 알았는데....)

    • 얼음물고기 2008.12.09 21: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아요..
      제가 착각했습니다.
      노수석군의 죽음은 96년 3월말입니다.
      문득, 학교 자체적으로 열렸던 노수석 추모식에서 "이제 움켜쥔 주먹을 펴지 않겠다"란 시 낭송을 했던게 기억나네요.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18. 97+99 2008.12.10 2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78년생이라 원래 97이어야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하고 취직했다가 99년도 대학갔어요...

    97~99까지는 학부제 시험대상이였다고 생각합니다...계속해서 바뀌는 학부제 범위 탓에
    나중엔 누가 내 선배고 내 후배인지 정신이 없던 상황...정말 저주 받을 학부제...

    결과론적으로 보면 학부제 덕에 각 학과는 선배-후배-교수들과의 유대관계가 끊어졌고,
    때문에 학과 학생회의 힘이 약해졌고, 때문에 대학이 더이상 학생들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죠...동기들도 대학생이란 것 말고는 소속감이 없다보니 다들 제 관심사에만 몰두할 뿐...
    과는 물론 동아리 활동 열심히 하는 애들도 별로 없었던 것 같네요...

    00 01의 과도기를 거쳐 02 이후 부터는 대놓고 학교는 취업을 위해 거쳐가는 관문일 뿐이다는 눈빛으로 입학하자마자 취업을 위한 공부를 하더군요...너 국사학과를 온 이유가 뭐냐고 물어봤더니 공무원 시험 중에 국사가 제일 어렵다고 해서 왔다던 02의 대답에 저도 더이상 과방을 찾지 않게 되었다는;;;

    사람은 아니지만 학부제란 요 요망한 것에 대해서도 함 곱씹어 볼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물론 298에서도 비주류인 97~99들의 세계이지만;;;;;

    참고로 우리시절 그 미약했던 운동권의 대미를 장식했던 사건~
    00년도 3개월 동안이나 등록금 투쟁했는데...오랜만에 95 96 선배들 주도로 수업거부하고 총장실 점거하고 후배들 줄줄이 동원해서 몇일씩 집회도 가지고 그랬는데...
    학교가 큰 인심이라도 쓴양 소숫점 한자리 짤라주고 총학이란 넘들이 우리가 이겼다! 하는 바람에 동기들끼리 통장으로 들어온 3만 몇천원 모아서 다시는 운동하지 말자~ 공부나 열심히 해서 빨랑 졸업이나 하자~하며 술먹었던 기억이...한 일년쯤 뒤 그때 삭발했던 총학생회장이 외제차 끌고 가는는 걸 봤다는 풍문이 한동안 학교를.....

  19. 노고지기 2008.12.11 1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94학번입니다.

    빠콩인지 뭔지가 총장이라고 앉아있어 쪽팔려 죽는 줄 알았던 그 학교에서 94년에 입학해 2002에야 졸업했지요.

    94년 쌀투쟁, 95년 전노구속투쟁, 96년 연대항쟁, 97년은 영삼이 말기로 한총련이 이적단체로 규정되며 더 말할 것도 없이 탄압받던 와중에 대의원으로 활동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94년 홍대에서의 쌀투쟁이 있었는데, 그 현장에 있진 않았지만 대자보를 통해 본 사건의 과정을 통해 분노를 느꼈고, 이후 95년 5.18 학살자 처벌 투쟁에서 봄부터 겨울까지 거의 매일같이 종로와 명동 거리를 뛰어 다니며 최루탄을 마셨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던 논리를 뒤집고 전노 구속이라는 조그만 성과도 이루어 냈구요. 뭐 김대중 당선 후 사면되긴 했지만...

    96년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연대항쟁으로 대표되는 한 해였지요. 8월 12일에 연대에 들어가 17일에 빠져나오긴 했으나 남학생들은 모두 사수대로 나서야 했고, 그 해 엄청난 물난리에도 두대 밖에 출동하지 않았던 헬기 열몇대가 연세대 상공에서 뿌리는 최루액을 맞으며, 그에 맞서 옥상에서 돌을 깨어 던졌던 기억... 이학관 옥상에서 당장 눈 앞에 더이상 던질 돌이 보이지 않을 때 갈색 병이 보이길래 던지려고 하니 뒤에서 누군가가 그거 무슨 병이냐 그러기에 봤더니 그저 비료. 아마 그게 염산이었어도 당시에는 던져버렸을 것 같았던 광기와 누구를 향했던 건지 분명하지 않은 분노가 제 기억의 96년을 채우고 있습니다.


    96년 말 단과대 학생회장으로 당선되자 마자 97년 초 노동법 안기부법이 날치기 통과 되어 집회에 나갔다가 구속. 곧 보석으로 풀려나긴 했으나 그해 6월 1심 재판을 받기도 전에 집회에서 찍힌 사진 달랑 한장 때문에 수배. 오히려 구속되어 있을 때가 더 편하게 느껴졌던 그 수배기간 동안 줄줄이 연행되어 가던 동료 수배자들을 보며 분노하는 한편, 1심 재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연행이 되면 얄짤 없이 감방에서 몇년을 썩어야 한다는 걱정에 결국 부끄럽게도 자진출두해서 해결은 되었지만, 한총련 탈퇴서에 사인을 하고서야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후 자괴감에 학생회장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소위 잠수란 걸 탔었고, 97년 말 영삼이가 불러 온 IMF로 인해 98년 3월에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입대했습니다.

    논산에서 운좋게 카투사 9804기 마지막 소선으로 뽑혔으나 동두천에 자대 배치 받고 1주일만에 구속됐던 경력으로 인해 한국군으로 원복됐었습니다. 2년 2개월 간의 군생활은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최악이었습니다. 연간 수십만명의 젊은이들이 군대에서 말도 안되는 지시와 명령과 작업을 하며 머리는 비어가거나 까라면 까라는 생각을 채워가고 있으니 군대가 안망하면 대한민국이 망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2000년에 제대하여 2001년에 복학했더니 휴학 당시 학점 2.7이면 상위 30% 가까이 되었는데, 이건 뭐 학점 인플레도 이만 저만이 아니어서 평균이 3.0 정도는 되겠더군요. 반 농담으로 요새 애들은 하라는 데모는 안하고 공부만 하냐고도 했었는데... 2002년에 졸업하려 했더니 취업대란으로 포기하고 대학원 진학. 2년 후 졸업하려했더니 어지간한 회사는 다 토익 점수를 요구하데요. 단지 회사를 들어가기 위한 필요 없는 공부는 하지 않겠다는 알량한 자존심으로 대기업은 지원하지도 않고, 토익 점수를 요구하지 않던 당시 벤처기업에 입사해서 캐나다에 주재원으로 나왔다가 지금은 이곳의 나름 괜찮은 회사에 자리를 잡아 눌러 앉아 있습니다.

    지금도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동지들에게 한켠 미안한 마음을 지닌 채 빚쟁이처럼 늘 당당하지 못하게 지내왔었는데, 당시를 살았던 우리 세대들 많은 수가 다소 패배주의에 빠져 살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글을 쓰고 나서 보니 마음 통하는 친구와 술잔 나누며 긴 얘기를 하고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어느 세대 건 다 할말이 있겠지만 우리도 이제 우리의 얘기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관심 가지고 참여하겠습니다.


    - 멀리 캐나다 워털루에서 -

  20. Favicon of http://nostanding.tistory.com BlogIcon 돈 까밀로 2008.12.25 2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홍진호는 298 세대보단 한참 어릴 것 같구요, 임요환이나 '쌈장'으로 이름 날렸던 이기석이 좋겠네요.

  21. BlogIcon kgb 2015.02.26 13: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