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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기자, 여행감독 1호, 재미로재미연구소 소장. 이메일 gosisain@gmail.com 트위터 twitter.com/dogsul 페이스북(페이지) facebook.com/kojaeyoul 독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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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년만에 뮤지컬 리뷰를 쓰게 만든 <미스 사이공>

B급 좌판 위원회/뮤지컬 가계부 | 2010. 5. 3. 23:04 | Posted by 소셜미디어의 촌철살인마 독설닷컴




<미스 사이공>은 볼만한 뮤지컬이다. 비슷한 가격대의, 협찬 기업의 사은품용 티켓에 의지한 공연보다는 훨씬 그렇다. 오리지널 공연을 보지 못해 비교할 수 없지만 라이센싱 공연으로는 충분한 수준에 이른 작품이다. <오페라의 유령> 라이센싱 공연과 투톱으로 인정해줄만하다. 베트남전 종전 35주년을 기념 관람을 권한다. 
   

먼저 말 많고 탈 많은 헬리콥터 장면에 대해서 먼저 얘기해보자. 많은 관객들이 <미스 사이공>이 오리지널을 충실하게 복원 했느냐 못했느냐의 기준으로 이 헬리콥터 장면을 든다. 헬리콥터가 등장하면 제대로 한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뮤지컬에서 헬리콥터 등장장면 자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담장을 사이로 둔 남녀의 이별의 정한을 어떻게 표현해 내느냐다. <미스 사이공>은 긴박한 순간 만나지 못하는 연인의 안타까움을 담장의 위치를 수시로 바꾸면서 안팎을 넘나들며 자유자재로 표현해냈다. 이 장면의 마무리를 헬리콥터 그래픽이 맡는다. 그래픽 기술은 이물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진화했다. 


헬리콥터 장면과 함께 <미스 사이공>의 중요한 비판 포인트로 꼽히는 부분은 바로 오리엔털리즘이다. 사려 깊고 인간적인 서양인 캐릭터와 단순하고 이기적인 동양인 캐릭터가 극적인 대비를 이루면서 ‘동양에 대한 왜곡된 시선’이 극명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특히 순종적인 동양여성상 때문에 더욱 그렇게 읽힌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프랑스 혼혈인 ‘엔지니어’의 비열한 모습은 ‘서양인의 씨도 동양의 척박한 밭에 뿌려지면 2류 서양인이 될 뿐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대본을 쓴 알랭 부르리는 이것을 프랑스가 베트남에 남긴 원죄를 보여줄 의도였다고 말하지만, 의도는 의도일 뿐 해석은 오리엔탈리즘으로 읽힌다. 


이런 오리엔탈리즘은 분명 불편한 부분이다. 우리가 동양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마찬가지로 그들이 이렇게 표현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이 뮤지컬을 만든 사람들은 서양인이기 때문이다. 타자화 되었기 때문에 타자화 된 우리의 시선으로 본다면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우리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문화인류학자가 아니다. 




오리엔탈리즘은 남성중심주의와 결합되어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부모님이 맺어준 정혼자 투이보다 불과 보름 만났던 미군 크리스에게 빠진 킴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 정혼자는 혁명을 마치고 당당하게 킴 앞에 나서지만 킴은 크리스의 아이를 키워야 한다며 거부한다. 그리고 투이를 죽이고 묵묵히 크리스를 기다린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오독’이 발생한다. 이것을 풋사랑에 달뜬 여인의 치기로 본다면 이것은 반페미님적 행위다. 그러나 이 부분은 순종적인 사랑이 아니라 모성으로 읽어야 한다. 그녀가 크리스를 기다리게 만든 힘은 애끓는 모정이었다. 아들 탬을 지옥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그녀는 크리스를 기다렸다.  


여기서부터 킴의 감정선은 모성을 중심으로 읽어야 한다. ‘오독’이라고 말한 것은 작품을 처음 구상한 클로드-미셀 쇤버그의 말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미스 사이공>과 관련해 호치민 공항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앞에서 이별하는 모녀 사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뮤지컬의 시작이 ‘모성’이었다는 방증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순애보적 사랑에 방점이 찍힌 것은 아마 세일즈포인트가 젊은 여성들이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탬 만한 아이를 둔 엄마들은 뮤지컬이 아니라 아동극을 찾을 테니까. 그렇더라고 해도 사실은 사실이다. 이 뮤지컬이 세계 4대 뮤지컬로 꼽힐 수 있는 것은 이런 주제의식이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 이 뮤지컬은 반전뮤지컬로 읽히기도 한다. 




이제 관건은 이 뮤지컬을 얼마나 한국적으로 바꿨느냐 하는 것이다. 그 작업에 대해 평가할 위치는 아니지만 관객의 자격으로 감히 말하자면 성공적이라고 말하겠다. <미스 사이공>은 구현해내기 어려운 뮤지컬이다. 제작자 카메론 매킨토시도 초연 후 상당기간 동안 완성도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첫 번째 공연은 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이번 공연은 여물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배우들의 탄탄한 팀웍이 돋보인다. ‘아이돌’에 의지하지 않고도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과 원숙한 ‘어른돌’들의 농익은 연기로 감정을 들었다 놓는다. 한국어 대사가 어색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미스 사이공>만의 문제가 아니라 번안뮤지컬 전체의 문제니 특별한 흠은 아니다.   


한국이 월남전 참전국가라서 더 그렇게 느껴졌을까? 여느 번안뮤지컬과 다르게 캐릭터라이징이 잘 되어있고 잘 받아들여진다. 김성기(엔지니어)-김보경(킴)-이건명(크리스)의 조합으로 보았는데 하모니가 좋았다. 비루한 세상에 침을 뱉는 엔지니어, 그 세상에서 조그만 자신의 꿈을 지켜나가는 킴, 그리고 우유부단한 정열의 소유자 크리스, 그들의 캐릭터는 현실에 단단히 동여매어 있다. 


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를 찍은 <미스 사이공>이 5월14일 충무아트홀 대극장에 입성한다. 뮤지컬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달력에 표시해 놓고 꼭 한 번 보기를 권한다. 우리의 시선으로 우리의 가락으로 월남전 뮤지컬을 만들어 내기 전까지는 <미스 사이공>에 신세를 질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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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ukcho 2010.05.03 2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류학자 아닌 관객의 입장^^(브로드웨이 공연)에서 미스사이공 노래들 주옥같습니다. 공연 추천할말한~ 하지만 오리엔탈(한국공연은 아마 순화), 마초보다 더 불편했던건 '미스 사이공'이 순간순간 '미스 꼬레아'로 오버랩되었기 때문~

  2. 호석군 2010.05.04 17: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 시선으로 만든 뮤지컬도 있었어요. 블루사이공이라고, 마리아마리아 하시는 강효성씨가 주연했던. 한 7년 정도 했는데 그렇게 흥행되지는 않았죠.

  3. 2010.05.20 2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