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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기자, 여행감독 1호, 재미로재미연구소 소장. 이메일 gosisain@gmail.com 트위터 twitter.com/dogsul 페이스북(페이지) facebook.com/kojaeyoul 독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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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마지막 꿈, 그것은 '귀농'이었다 (달콤한 귀농-1)

달콤한 귀농 | 2009. 9. 28. 17:45 | Posted by 소셜미디어의 촌철살인마 독설닷컴



도시인들에게는 '귀농로망'이 있습니다.
'언젠가 귀농(혹은 귀촌)하겠다. / 그러나 농사는 힘 들어서 못짓겠다. / 하지만 벌어놓은 돈이 적으니 돈벌이는 하고 싶다'라는 것이 '귀농로망'의 핵심입니다. 

이런 '달콤한 귀농'이 가능할까요?  
'독설닷컴'에서는 오늘부터 추석연휴까지 전국 각지의 귀농인을 대상으로 한 취재결과를 공개하며 이에 대한 가능성을 짚어보겠습니다.

귀농인 취재 중 고 노무현 대통령의 흔적을 많이 보았습니다.
어렵게 사례를 찾아 현장에 가보면 노 대통령이 이미 다녀갔던 곳이었습니다. 
'사람 사는 농촌'을 위한 노 대통령의 고민은 보여주기 위한 쇼가 아니었습니다. 
 
이제 그는 떠났습니다.
그러나 제2 제3의 귀농인들이 '노무현의 못다한 꿈'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맨 먼저 전남 함평군의 김요한 목사 이야기입니다.




인생 2모작 가꾸는 '달콤한 귀농'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귀농 역사상 최고위급 귀농인이었다. 퇴임 후 고향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로 돌아간 노 전 대통령은 전국의 농촌을 답사한 후 봉하마을 개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오리농법’을 도입한 벼농사를 시작하고 ‘장군차’ 등 소득작물을 키우고 ‘보리빵’을 만들어 팔게 하고 ‘생태연못’을 조성하는 등 관광자원화할 수 있는 ‘경관농업’을 꾀했다. 사람들의 마지막 기억 속에 그는 '밀집모자를 쓴 늙은 농부'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봉하마을에 검찰 수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노 전 대통령은 생애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 행복한 모습 때문에 사람들은 밀짚모자를 쓴 채 미소 짓는 농부의 모습으로 그를 기억한다. 비록 그의 생이 비극으로 마무리되면서 ‘농촌살리기’는 빛을 보지 못했지만 이광재 의원이 의원직 사퇴서를 내고 내려와 봉평 메밀을 심는 등 측근들이 그 뜻을 잇고 있다.

‘사람 사는 농촌’을 만들기 위해서 노 전 대통령은 강원도 평창군 바람마을 의야지 등 전국 방방곡곡 잘나간다고 소문난 농촌을 두루 방문했다. 전남 함평군의 ‘황토와 들꽃세상’ 역시 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 주민과 함께 관광버스를 타고 와서 방문한 곳이다. ‘황토와 들꽃세상’은 김요한 목사가 폐교를 생태 체험장으로 일군 곳이다. 김 목사는 방문에 답하는 뜻에서 봉하마을에 생태연못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평생 직업인 목사직을 포기하고 귀농을 결심한 김 목사는 2004년 아무 연고가 없는 함평군 오두마을의 폐교를 찾아왔다. 100년 이상 된 벚나무 여섯 그루가 있는 폐교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찾아온 것이다. 방치된 폐교가 있는 마을은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다. 김 목사는 이 폐교를 개조하기로 결심했다. 

김 목사는 폐교를 4계절 생태체험이 가능한 곳으로 바꾸어나갔다. 관광자원이 되는 경관농업을 배우기 위해 일본 홋카이도를 두 번이나 답사했다. 그러면서 그는 두 가지 원칙을 정했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재활용한다는 것과 시설 만들기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우리 농촌은 목욕하고 얼굴만 깨끗이 씻는 것만으로도 경쟁력 있는 경관이 된다. 있는 것을 변형하지 않고 가꾸기만 했다”라고 말했다. 

폐교 안팎에 들꽃을 심고 뒷산 언덕에 국화를 심었다. 마을 주민을 설득해 밭에는 해바라기를 심었다. 온화한 기후를 활용해 겨울에 피는 인동초·복수초·노루기 같은 꽃도 심었다. 그리고 함평나비축제를 겨냥해 제비꽃처럼 나비가 좋아하는 보라색 계통의 꽃을 많이 심었다. 그렇게 해서 봄(들꽃) 여름(해바라기) 가을(국화) 겨울(인동초) 사철 꽃을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다.



5년 만에 마을 모습이 완전히 바뀌었다. 마을 사람들 표정도 바뀌었다. 12가구였던 마을이 17가구로 규모가 커졌다. 김 목사는 “이사 오기 위해 대기 중인 가구도 네 가구나 된다. 금년 중으로 20가구가 넘을 것으로 보인다. 함평에서 유일하게 인구가 증가하는 곳이다”라고 말했다. 주로 광주에서 하던 지역 모임들도 ‘황토와 들꽃세상’을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마을에 활기가 돌았다. 

투자도 이어졌다. 전남도는 마을에 한옥 14채를 지원했다. 2000만원을 직접 지원하고 3000만원을 저리로 융자해주는 파격적 조건이었다. 마을 주민의 삶에도 변화가 왔다. 김 목사는 “1년에 한 번 오던 도회지 자녀들이 한 달에 한 번 오게 되었다. 숙박하기도 편하고 자연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김 목사의 자녀에게서 나타났다. 자녀들이 그가 어렵게 일군 체험마을을 계승하기로 한 것이다. 아버지의 무모한 도전에 반대했던, 명문대를 졸업하고 금융계에서 일하는 큰아들은 잠시 회사에 휴직계를 내고 이곳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인생 2모작을 설계하고 있다.

물론 이런 성공 사례는 다분히 예외적인 경우다. 농민들보다 더 부지런히 일하고 현지 농민과 완벽하게 ‘화학적 결합’을 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각오가 없으면 귀농할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한다면 너무나 가혹하다. 이런 대역사를 이루지 않아도, 이 정도 각오가 없어도 귀농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도시인들이 가진 ‘귀농 로망’은 간단하다. ‘적당한 시기에 귀농(혹은 귀촌·귀향)하고 싶다. 그러나 농사는 못 짓겠다(짓더라도 돈벌이가 아닌 자급자족을 위한 농사만 짓고 싶다). 하지만 벌어놓은 돈이 충분하지 않아 적당한 돈벌이를 갖고 싶다’라는 것이다. 이런 ‘달콤한 귀농’은 불가능한 것일까.

귀농 관련 전문가들은 흔히 ‘귀농이 이민보다 힘들다’라고 말한다. 실제 귀농 정착률은 10~20% 수준으로 역귀농하는 비율이 80% 이상이다. 이 수치는 역이민 수치보다 훨씬 높다. 민승규 농림수산식품부 1차관은 “농민 관련 교육 프로그램 중에 귀농 프로그램이 가장 길다. 그만큼 사전준비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귀농 수요는 꾸준히 는다. 은퇴를 앞둔 45~55세 직장인에게는 여전히 ‘귀농 로망’이 있다. 어설프게 자영업을 시도했다가 다 날리느니 귀농을 하면 최소한 살 집과 땅은 마련하고 농산물이 안 팔리면 직접 먹으면 된다는 단순한 셈법이 계속 귀농 계산기를 두드리게 만든다. 과연 귀농이 답이 될까. 전국 각지의 귀농인을 만나보고 답을 구해보았다.  

(이하, '달콤한 귀농' 시리즈 계속)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앞산꼭지 2009.09.28 19: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멋진 기획입니다
    "전국 귀농의 현장을 찾아서"라는 부제가
    더 어울릴 듯한데요....ㅎㅎ.

    귀농, 역시 어려운 일인 듯합니다.
    저는 귀농의 생태학적 접근과 지역운동의 관점을 더 염두해두고 있긴 합니다만,
    일단은 귀농 인구가 늘어나는 것이 급선무란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기획들은 상당히 도움이 될 듯합니다.
    앞으로 계속 기대하겠습디다.

    그리고 고 노무현의 마지막 꿈이 귀농이었다는 것은
    저 또한 공감이 가는 부분입니다.
    화면을 통해, 지면을 통해서 봉화마을에서 농사짓는
    노무현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귀농의 이미지를, 농사의 이미지를
    강열하게 심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그 깊이는 다를 지언정 귀농을 희망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식을 심어준 것이지요...

    암튼 저도 그에 관한 블로깅을 한적이 있는데,
    관련글로 달아봅니다.

  2. 다까끼 2009.09.28 19: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능 배신 부패의 표본이라고 칭해도 무자람이 없는 자가 영웅이 되었도다! 만주벌판에서 독립군 때려잡은 수훈으로 일왕의 표창까지 받았던 다까까 마사오같은 인물도 한국의 영웅이 되었으니 뭐 이상할것은 없다만! ㅋㅋ

  3. 가슴아파 2009.09.28 2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그리운 당신께 ~눈물많은 당신께서 울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우시지 마세요 당신이 우시면 우린 너무 슬퍼요 /당신께서 안계신 우린 울고 있습니다 세월이 가면 잊혀지겠지 하면서도 우린 당신을 잊지못합니다 우리 당신없는 이 세상에서 당신을 그리며 울고있습니다 당신께서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마냥 당신이 그립기만 합니다

  4. 가슴아파 2009.09.28 2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꼭 가셔야한 했던 당신 그리움만 남겨주신 당신 보고싶습니다 당신이 그립습니다

  5. 가슴아파 2009.09.28 2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악함아 없는 선함이 얼굴에 절절하다 얼마나 외롭 웠으면 내 가슴이 찢어져 애리고 아프다 살아 돌아오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6. 가슴아파 2009.09.28 2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을 잃은 슬픔 표현할길 옶니다 걷으론 웃고 있어도 가슴은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울부짖고 있습니다 숨이 맊힙니다

  7. 토끼뿔 2009.09.28 2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까 말씀 드린 기사(다큐멘터리)의 서머리인데...제가 생각했던 거랑 좀 달랐네요.
    주말농장의 심화된 형태를 다룬 비지니스네요.
    어쨌든 서머리 번역해서 붙여봅니다.
    *****************************

    식품안전지향에서 불황으로 인한 절약지향까지 더해져서 자치단체가 관리하는 시민농원은 최근 5년에 16% 증가, 전국 3200개소까지 늘어났다.
    잦은 손이 많이 가는 점 때문에 초심자에게는 어려운 야채수확을 관리스텝이 손을 빌려주어서 즐기면서 농사를 체험할 수 있도록 서포트하는 <임대농원비지니스>까지 등장했다.
    사장은 니시츠치씨(27살) 니시츠치씨의 임대농원에서 만드는 야채는 모두 "무농약재배". 원래는 잡초나 벌레먹는 것때문에 고생하지만 니시츠치씨의 임대농원에서는 인스트럭터가 관리를 도와준다.
    이렇게하여 이용자는 주 일회나 원격작업으로 "재배를 즐길"수 있게 되었다.
    가족이 모두 함께 이용하는 일이 늘었다고 한다.
    "주말에는 아이들이 모여서 마치 유치원처럼 되곤 해요"라고 니시츠치씨는 웃는다.
    대학에서 농업경제학을 배운 니시츠치씨는 사람들이 스스로 먹는 야채를 재배하도록 돕는 것이 동시에 휴경지의 재생에도 도움이 되니까 일석이조의 비지니스를 목표로 하고 있다.
    어느날 니시츠치씨가 간 곳은 가나가와현의 어떤 주택가.
    그 한 켠에 고령화로 경작을 그만둔 밭이 있었다. 원 주인은 "여태껏 깔끔하게 손보던 밭을 버려두어 황폐하게 되는건 원하지 않는다"라고 농지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했다.
    한 편, 회사근무로 바쁘지만 "안전한 야채를 먹고 싶다"라고 집에서 차로 30분 떨어진 농원을 빌린 나카니시씨 가족. 재배한 야채를 수확하는 것을 목표로 인스트럭터와 이인삼각을 시작했다.

  8. 농촌쇼핑몰이 정답 2009.09.28 23: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동 직거래를 할 수 있는 농촌쇼핑몰 얘기를 꼭 취재해 주세요.

  9. 돌발뎃글 2009.09.29 08: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루라도 빨리 농촌에서 농사짓는 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이 꼭 한 사람 있습니다.


    국민들은 그가 농사 짓는 모습을 귀농이라하지 않고
    귀양이라 부르고 그가 사는 곳은
    유배(流配)지 라고 말 할 것입니다.

    얼마전 텅빈 유엔총회에서 4대강 삽질 강연을하고
    지금은 서울에 살고있는, 그는 누구 일까요?

  10. 이동현 2009.09.29 1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읽고 갑니다.
    그동안 댓글 하나 담지 못했습니다. 귀농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일본에서 박사학위 받고 돌아와 귀농한지 이제 4년을 넘었습니다.
    정말 한사람의 귀농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 농촌과 농토의 가치를
    담을 수 있는 귀농 프로그램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좋은 기사 늘 자주 봅니다.

  11. 여름지기 2009.09.29 13: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파도 무지아픈 이야기이지요!
    귀농!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요^^*!

  12. 2009.09.29 14: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3. 무릉도원 2009.09.30 1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재열님의 블로그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달콤한 귀농을 이뤘으면 하는 바램이 듭니다......보람있고 행복한 한가위 되시길 기원합니다...*^*

  14. 촌장 2009.09.30 1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부에 직접닫는 상쾌한 기운을 느끼게하는 현실을 직관하는 좋은글 감사합니다.
    10년을 준비하여 3년전 귀촌을하여 글의 "달콤한 귀농"을하여 자연에서
    집사람과 둘이서 너무도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귀농,귀촌,전원생활을 준비중인 사람들에게
    무료 멘토링을 해주고 있는 사람입니다 .
    귀촌 너무도 어려운 일이지만 순서에 의하여 차분하게 준비를 하고
    제대로된 조언자를 만날수 있다면 불가능한것은 절대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15. 김자윤 2009.10.01 13: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무현 대통령 사진은 제가 찍은 사진인데 출처가 없네요.
    사용하는 것은 고맙지만 사진은 반드시 출처가 있어야...

  16. 하랑사랑 2009.10.13 07: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로 귀농은 현실입니다.
    저희 부모님도 귀농하신지 10년 가까이 되셨는데 처음 5년간은 뼈빠지게 일한다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열심히 하셨지만 실패가 더 많으셨습니다.
    물론 지금도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면서 열심히 일하고 계시지만요...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지만 농사야 말고 가장 힘든 일 중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누군가가 농담으로 "나도 농사나 지을까?" 라는 말을 들으면 "농사도 결코 쉬운 일 아니다." 라고 말해 주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