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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한쪽에서는 그들을 열사라 불렀고
한쪽에서는 그들을 도심의 테러리스트라 불렀다.
그들의 죽음을 이유로
정권을 비난하려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의 죽음을 매도해
정권을 보호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희생양이었다.
강경진압의 희생양이었고,
억압하는 시대의 희생양이었다.
그러나 혼란의 시대는 그들의 죽음을 온전히 추모할 수 있는 차분함을 허락하지 않았다.
언론노조 총파업집회에 참석한 용산참사 유가족들.
예비사진기자 모임 Mirror에서 제작한 용산참사 추모 사이버앨범이다.
이 사이버앨범을 보고 용산참사현장에서 찍었던 사진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 달 전쯤, 대규모 용산참사 추모대회가 열리는 날 오전에 참사현장을 찾았다.
한산했다. 조문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대규모 추모대회가 열리는 날, 정작 참사현장은 쓸쓸했다.
거리의 사람들은 참사현장이 부담스러운 듯 외면하고 총총걸음으로 지나쳤다.
죽음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방식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른바 진보세력은 참사 희생자들을 열사라고 부르며 치켜세웠다.
그리고 열사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말자고 역설했다.
그러나 그들을 열사라고 불러 일반 국민들로부터 괴리시켜 그들의 죽음을 헛되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까?
단순히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정권퇴진 운동'과 같은 짐을 안겨서 편히 추모하지 못하게 한 것을 알까?
이른바 보수세력은 참사 희생자들을 도심의 테러리스트라고 매도했다.
그리고 그 죽음의 책임이 그들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전철연'을 괴물로 만들어서 일반 국민들이 참사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미선이 효순이' '혜진이 예슬이' 다음에 우리 사회의 희생자 대열에 끼었어야 할 상림할아버지는...'전철연'이라는 이름에 묻혀 버렸다.
그런 생각을 하고 찾아간 용산참사 현장,
이른바 진보단체들의 '애도경쟁'이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서로 '내가 더 가슴 아프게 용산참사를 추모하고 있어'
'우리 단체가 열사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게 할꺼야'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보기에 불편했다.
죽음을 죽음으로써 추모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그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게 하는 것 아닐까?
앞으로 이런 죽음이 또 발생했을 때, 그때도 이렇게 정신없이 '추모경쟁'과 '매도경쟁'을 해야되는 것인지...
죽음을 죽음으로써 슬퍼할 수 있는, 누구든 편하게 국화 한 송이 놓고 올 수 있는 세상이 왜 안될까?
추모 플래카드도 경쟁했고
추모 천막도 경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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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기는' 서민이 되지 말고 '굶어죽는' 서민이 되어라?
Tracked from 거인의 정원에서 2009/03/04 07:59 삭제슬라보예 지젝의 희생자(Victimization) 논의를 용산 사태에 적용해보자. 위대한(?) 미국은 아프리카의 굶어죽는 아이, 학살당하는, 즉 당하기만 하는 제3세계의 민중은 '인도주의'적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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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들을 접할 때 그저 '안타깝다'라는 생각만하고 지나치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플래카드가 걸리고 '추모경쟁'을 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하고, 순수한 마음의 추모없이 지나치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오전에 좋은 글 읽고 갑니다.
저도 열사라 칭하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질때가 있지만 그렇다고 그러한 명칭, 구호, 현수막들이 경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제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열사라고 외치나, 그저 한 서민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말하나 순수한(?) 마음의 추모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용산참사는 끔찍한 사건이었고, 접근하기 어려운 오히려 애써 외면하고 싶은 정도의 사건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은 것 같더군요. 아마도 정권의 의도도 그런 측면에서 여론전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아무튼 읽고나서 왠지모를 서글픔이 드는 글입니다.
매일 같이 검은 상복을 입고 영정을 들고 거리에서 찬바람 맞으며 열사라 불리는 아버지, 남편, 가족의 정당성을 일으켜 세우고자 하는 유족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무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