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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서세원씨가
KBS 라디오 가을개편을 통해서
복귀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와 관련한 논쟁이 한창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논쟁은
외모에 대한 인상비평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서세원씨 관련 논쟁이
좀더 진지해질 수 있도록
알려지지 않은 그의 이면을 공개한다.
서세원씨가 KBS 라디오 해피FM(106.1Mhz) ‘이광기 김현숙의 네시엔’ 후속 DJ로 내정되었다는 기사가 나온 뒤로 서세원 복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서씨는 이미 지난 2005년 5월 SBS FM '4시의 열사모' DJ로 방송복귀 시도했다가 좋지 않은 여론 때문에 포기한 적이 있다.
그의 복귀를 놓고 인터넷 공간이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의 외모에 대한 비난에 집중되고 있다.
쥐상이라고. 그래도 이명박 대통령보다는 낫지 않나?)
서세원씨에 대한 논쟁이 공정하게 진행되기를 바라면서
알려지지 않은 그의 또 다른 일면을 말하려고 한다.
일단 내가 서세원씨를 직접 옹호하는 것은 부적절한 일이다.
나를 포함해 <시사IN> 기자들은 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시사저널 파업’ 당시 그는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시사모)’에 속해서 우리를 지지하는 활동을 열심히 펼쳤다.
우리가 <시사저널>과 결별 선언을 하고 <시사IN> 창간에 나섰을 때는
다시 ‘참언론실천독자모임’에 속해서 창간을 도왔다.
혼자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몰고 와서 도왔다.
(이런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가 자신에 대한 이미지가 부정적인 이유로 공개적으로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세원씨는 왜 <시사IN> 기자들을 도와주었을까?
그것은 2002년 연예비리사건이 불거졌을 때 유일하게
그가 저지른 잘못과 저지르지 않은 잘못을 구분해서 보도한 언론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언론이 그에 대해 마녀사냥에 나설 때
주진우 기자만이 그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한 기사를 작성했었다.
(관련 기사 :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26052)
이 기사를 읽어 보면
그가 국가권력에 의한 피해자라는 사실,
언론의 무분별한 마녀사냥의 희생양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서세원씨는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일로 북측 관계자와 여러 차례 만나고 왔다.
'연예비리사건'의 실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건 이후 그가 6년 동안 어떻게 지냈나 하는 것이다.
보통 논란을 일으킨 연예인들은 자숙의 시간을 갖는다.
서세원씨는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자숙 기간에 한 일 중 시사모 활동은
그가 한 사회활동 중 극히 작은 일부분일 뿐이다.
언론에는 <도마 안중근>을 제작한 ‘엔터테인먼트 사업가’로 활동했다고만 나온다.
그러나 그것 역시 그의 삶의 일부분일 뿐이다.
그는 그동안 '또하나의 삶'을 살았다.
일단 그는 그동안 수차례 북한에 다녀왔다.
(간첩활동을 한 것이 아니다)
진보의 어른인 함세웅 신부와 함께 ‘안중근의사 기념사업회’일로 다녀왔다.
지난해에도 평양에 다녀왔고 그 경험을 통해
일부 단체들이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을 놓고 사기극을 벌이는 것을 <시사IN>에 고발하기도 했다.
(아래 관련 기고글 첨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고문인 함세웅 신부님과 어울려 다니면서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활동을 하면서
서씨는 어떤 ‘좌빨’ 활동가보다 더 열심히 사회활동을 했다.
(이 부분은 나중에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서세원씨의 정치색에 대한 부분은 이렇다.
지난 총선 때 한나라당 이철우 의원 지지연설을 하다 선거법 위반 혐의로 걸렸다는 서씨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서씨는 선거 운동원으로 등록하고 지지 연설을 했기 때문에 이 사안은 무혐의로 처리되었다.
나중에 이 사건 때문에 그는 한나라당 지지 성향의 연예인으로 분류되어 곤혹을 치렀다.
그러나 그가 이 의원 지지 연설을 한 것은 오지랖이 넓은 탓이었다.
지난 총선 때 그는 여야 의원들의 러브콜을 많이 받았다.
실제로 그는 민주당 박지원 의원 지원 유세를 가장 열심히 했다.
(물론 친분 때문에 이당 저당 지인 지원활동을 펴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연예비리사건' 이후에도서씨 관련 부정적인 보도가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그가 사사건건 시비에 얽히는 이유 중에 하나는
검찰에 미운털이 박혔기 때문이다.
‘연예비리사건’ 수사 당시 검찰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것을 그의 매니저가 폭로했다.
이후 그는 여러 가지 송사에 휩싸였는데, 대부분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 지난한 과정에 대해서는 주진우 기자에게 글을 받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중 연예인은 이미지를 먹고 산다.
그 이미지가 부정적이라고 했을 때
그 책임은 일차적으로 본인에게 있다.
그러나 서세원씨와 관련해서는 국가권력과 언론도 일정한 책임이 있다.
어찌되었건, 판단은 누리꾼들의 몫이다.
서세원씨 복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아니 서세원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단순히 인상비평적인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이의 그의 남다른 이력까지 살폈으면 한다.
주> 다음은 서세원씨가 <시사IN>에 기고했던 글이다.
“유해 발굴할 확률 1%도 되지 않는다”
영화 <도마 안중근>을 연출한 서세원씨는 안중근 의사와 관련한 자료를 모으기 위해 중국과 북한을 수십 차례 방문했다. 서씨가 안 의사 유해 발굴과 관련한 내밀한 이야기를 <시사IN>에 보내왔다.
서세원 (영화 <도마 안중근> 감독·개그맨)
위대한 인물이 많다. 그 중에서 나는 고구려 명장 양만춘 장군과 안중근 의사를 존경한다. 양만춘 장군은 안시성에서 당 태종의 100만 대군에 포위당했지만 농성을 하면서 성을 지켰다. 결국에는 화살 한 발로 당 태종의 눈알을 맞춰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강대국을 상대로 한 전투가 상당히 충격적이고 멋있었다.
안중근 의사는 훌륭한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안 의사 몸에 북두칠성 점이 있다는 것에 더 끌렸다. 전설적인 영웅의 조건을 갖춘 셈이었다. 신화에는 몸에 별이나 독수리 모양의 징표가 많이 등장한다.
나이가 들면서 안중근 의사에 대한 관심은 계속 커졌다. 그러나 북한 출신인 안 의사 이야기는 금기 사항이었다. 안 의사의 행적, 유해 발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빨갱이로 몰리던 시대가 있었다. 사실 안중근 의사는 평화주의자인데 우리나라에서조차 그를 테러리스트처럼 묘사했다. 심지어 석학이라는 사람조차 안 의사를 빈 라덴에 빗대어 폄훼하는 것을 보고 크게 실망했다. 안 의사에 관해 전문가라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또 전문가를 만나도 그리 해박하지는 않았다.
<아리랑> <춘향전> <황진이> 같은 영화는 수십 차례 제작됐다. 춘향이에 대해서는 일거수일투족을 아는데 안중근 의사에 대해서는 아는 이가 별로 없었다. 안 의사의 정신을 좀 쉽게 어린 학생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1990년대 말부터 안 의사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2002년부터는 틈만 나면 중국에 가서 수십 번 안 의사의 발자취를 따라가 봤다. 하얼빈에서 다롄까지 자동차를 타고 안 의사가 지나간 길을 체험하며 더욱 안 의사와 가까워졌다.
우리나라는 지도자가 바뀔 때마다 위인을 보는 시각이 바뀐다. 박정희 정권의 이순신 장군처럼. 임진왜란 때 일본군과 싸우는 군사들이 있었는가 하면, 배에는 노 젓는 사람도 있었다. 그 노 젓는 사람도 영웅이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만 영웅이어야 했다.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은 허구다”
특히 안중근 의사는 유행가의 주인공인 것 같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오르락내리락 한다. 그 어떤 정권에서 안 의사의 일가친척을 찾아본 적이 있었나? 없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에 대해 고맙다고 해본 적 있나? 없다. 지난 정권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안 의사의 유해를 발굴한다고 했다. 이제 정권이 바뀌니 더욱 노골적으로 유해 발굴 운운한다. 안 의사를 띄우면서 기념관을 지으려 하고, 유해만 찾으려고 한다. 이게 전부는 아니다.
안 의사의 유해를 발굴한다고 하는데 이거 ‘구라’다. 유해를 찾을 확률이 1%도 안 된다는 것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더 잘 안다. 나는 안중근 의사 자료를 모으기 위해 중국에 스무 차례 넘게 드나들었다. 전문가를 만나고 고서를 뒤졌는데 안 의사의 유해가 묻힌 장소는 뤼순 감옥 옆 감옥묘지라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그러나 이 장소는 이미 개발로 인해 새 아파트가 들어섰다. 아파트가 들어설 때 감옥 묘지의 유해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그때 정부의 노력이 닿았어야 하는데 안타까울 따름이다.
지난해 봄 정부의 높은 분과 함께 뤼순 감옥에 갔다. 당시 중국 고위 관료는 안 의사의 유해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직접 설명했다. 내가 따로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러나 대답은 절망적이었다. (서세원씨는 이 고위 관료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여행을 비밀로 하겠다는 각서까지 썼다고 했다. 기자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서씨와 함께 뤼순에 간 정부의 고위 관료는 김만복 국정원장이었다. 2007년 3월 말 서씨는 김만복 국정원장, 안병욱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 윤원일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사무총장 등과 더불어 뤼순 감옥과 군사 보호구역을 둘러봤다.)
안 의사의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북한에 열 차례 가깝게 드나들었는데 안민석·임종석 의원과 동행하기도 했다. 사실 안 의사의 유해 발굴에는 북한이 더 적극적이다. 안 의사는 북한에서도 대단한 영웅이다. 안 의사의 고향이 북한이어서 그런지 그들은 김일성 주석이 살아 있을 때 안 의사의 유해를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북한에서도 유해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당 고위 간부는 “안 의사의 유해는 99% 없다”라고 했다.
나는 나머지 1%의 희망을 일본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안 의사의 총탄을 맞은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의 영웅이다. 총에 맞은 내복도 보관해 전시할 정도다. 안 의사 재판과 사형 기록을 보면 일제는 아주 세세한 것까지 보고하고 기록했다. 적어도 어디에 매장했는지 정확한 위치를 기록해두었을 것이다.
일본은 안 의사 유해 묻은 곳 안다?
일본은 안 의사의 묘지가 성지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때문에 기록에 남긴 뤼순 감옥 옆 감옥묘지가 아닐 가능성도 있다고 추정된다. 일본에 가져가서 묻었거나, 몰래 옮겨두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일본인이 양심이 있다면 이제는 안 의사와 관련된 모든 극비 문서를 내놓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과거사 정리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노력이 진정으로 친구가 될 첫 단추일 수도 있다. 안 의사 문제도 본질은 일본과의 관계가 명확해야 한다. 그러나 사후 100년이 다 되었는데 입을 열지 않는 일본인들이니 아마 어려울 것 같다.
뜬금없이 정권 바뀔 때마다 안중근 의사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이번에도 정부가 왜 이렇게 강하게 나오는지 알 수 없다. 신문을 보니 안중근기념관을 크게 짓는다고 한다. 안 의사가 좋은 집에 누워 있다고 좋아할 분이 아니다. 힘없는 백성과 함께 살다가 조국의 숙적 이등박문을 저격하고 의롭게 죽은 안 의사는 ‘시대의 예수’였다. 우리 민족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매맞고 죽임을 당해야만 했다. 우리는 안 의사의 정신을 헤아리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유행가처럼 안 의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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