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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고재열 기자입니다. 이메일 gosisain@gmail.com 트위터 twitter.com/dogsul 페이스북(페이지) facebook.com/kojaeyoul 페이스북 페이지는 facebook.com/kojaeyoul '믿지마 연애상담' https://story.kakao.com/ch/dogsuldotcom/app 독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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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비엔날레는 단풍축제였나?

취향의 발견/제주 문화이민 | 2017.11.16 11:27 | Posted by 소셜미디어의 촌철살인마 독설닷컴

제주비엔날레는 단풍축제였나?

 

제주비엔날레에 대한 이런저런 비난 기사를 보았다. 가을에 단풍축제처럼 흔한 비엔날레에 하나가 더 보태졌는데, 가보니 성급한 치적 사업이었고, 비엔날레라는 이름에 미치지 못하는 전시였다는 내용이었다. 15억 원의 예산을 사용했는데 볼만한 작품이 없었고 작가들이 신작을 내놓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과연 그럴까? 의문이 생겼다.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시절 뇌과학과 예술을 접목시키는 실험을 하고, 지리산프로젝트를 통해 대지예술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김준기 제주도립미술관장과 김지연 예술감독 콤비가 벌인 일이라, 의문과 기대와 걱정을 품고 제주비엔날레를 찾았다. 가서 일본군 공군기지 격납고를 활용한 알뜨르 전시와 저지리예술인마을의 제주현대미술관 전시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제주비엔날레를 비난하는 맥락은 성급하게 기획해서 비엔날레 흉내를 내었는데 비엔날레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이 비난을 안고 제주비엔날레를 돌아본 후, 비엔날레라는 것이 무엇인지, 비엔날레는 무엇을 보여주어야 하는지, 비엔날레는 관람객에게 어떤 경험을 주어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지역 경제의 관점에서, 비엔날레가 지역의 일자리 창출과 경제 부흥에 효용이 없다는 비난도 있었지만 이 부분까지 생각해 볼 겨를은 없었기에 이 질문은 생략한다.

 

제주비엔날레는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 질문을 던지는 방식은 어떤가? 그 질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생각하게 하는가?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 제주비엔날레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생각할 더미를 듬뿍 떠안겨 주었기 때문이다. 이번 제주비엔날레의 테마가 ‘투어리즘’이었는데, 여행에 대해서 진지하게 질문을 던졌다고 생각한다. 보기 좋은 풍경구에 그럴싸한 예술작품 놓아두고 인스타그램 명소로 만드는 방식이 아닌, 투어리즘에 대해 성찰하도록 이끌었기 때문이다.

 

특히 알뜨르의 격납고 전시는 신의 한 수였다. 알뜨르는 일제시대 일본군이 군사 공항으로 쓰던 곳이다. 제주비엔날레는 이 격납고를 전시장으로 활용했다. 이전에도 알뜨르에 답사를 왔던 적은 있지만 이번만큼 격납고를 많이 둘러보았던 적은 없었다. 설치된 작품을 보기 위해 열 개 이상의 격납고를 둘러보았다. 격납고를 둘러보면서 자연스럽게 태평양전쟁 그리고 이를 넘어서 중일전쟁 러일전쟁 청일전쟁까지 이야기가 확장되었는데, 이전의 답사가 얼마나 주마간산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예술이 자연스럽게 묻힌 역사로 이끌었다.

 

제주비엔날레 알뜨르 전시장의 김응용 프로젝트 매니저는 격납고가 오랜 시간 농민들의 쓰레기장으로 방치되어 있어서 전시를 위해 엄청난 분량의 쓰레기를 치웠다고 했다. 우리가 ‘기억의 의무’를 져버리는 사이 그렇게 일제의 잔재는 현재의 흉물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따로 시간을 내어 김 프로젝트와 함께 격납고 외의 지하벙커나 동굴진지도 둘러보았다. 둘 다 역시 방치되어 있었다. 다음 비엔날레 때는 이곳까지 전시를 확대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둘러보니 전쟁의 역사는 현재진행형이었다. 진짜 소름이 끼쳤던 것은 일본 신사의 토리이(우리 절의 일주문 비슷한 신사 입구의 구조물로 ‘신의 영역’을 표시한다) 모양의 기둥이 그대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관제탑으로 쓰였던 시설의 콘크리트 기둥이었는데 전형적인 토리이 모양이었다. 김 매니저는 현장에 왔던 일본 아이모리박물관 직원도 신사에 있는 토리이와 비슷하다고 했다고 귀뜸했다(실제로 근처에 일제시대 신사터가 있다). 가운데로 산방산이 보이는데 지도로 선을 그어보면 일왕이 있었던 황궁 방향을 향한다. 그 콘크리트 기둥을 둘러싼 역사의 진실이 궁금했다.

 

역사의 어두운 부분을 되새기는 여행을 ‘다크 투어리즘’이라고 한다. 조심스럽게 역사의 어둠을 더듬는데, 그 어둠에 빛깔을 더하는 것이 예술이다. ‘투어리즘’이라는 테마를 내건 제주비엔날레가 알뜨르의 무거움을 예술로 중화해 여행에 격을 더한 셈이다. 명명하자면 ‘다크 초콜릿 투어리즘’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전시물을 따라 역사의 잔해를 둘러보면서 자연스럽게 좋은 곳 보고 맛있는 것 먹고 재밌는 것 해보는 것 외에도 여행의 모형이 있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제주현대미술관에 가니 더 깊숙이, 더 치열하게 투어리즘을 성찰했다. 제주의 ‘다크 투어리즘’ 테마는 이념을 빌미로 수만 명의 제주도민을 학살한 4·3사건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무거운데, 기획진은 제주 4·3을 고발하는 작가들과 광주 5·18을 을 기억하는 작가들을 함께 여행하게 해서 공동 작업(기억 여행)을 진행시켰다. 상처가 난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상처를 살피는 모습은 불편하지만 인상적이었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인종 청소가 있었던 르완다 지역을 여행한 정연두 작가의 동영상을 상영한다. 얼핏 보면 단순히 아프리카의 풍경을 찍어 놓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 안의 슬픈 역사를 생각하면 밋밋한 풍경이 달리 보인다. 그리고 가난의 풍경이 여행자들의 구경꺼리가 되는 모습을 작업으로 옮긴 작품을 보면서 ‘관광의 그늘’을 생각하게도 했다. 그 무거움이 마음을 묵직하게 짓눌렀다. 최소한 단풍축제를 돌아본 소회는 아니었다.


주) 웹진 <연극IN>엑 기고한 글을 수정 보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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