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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의 역사 그리고 여행서의 종류

취향의 발견/예비 여행작가 | 2017.01.18 14:05 | Posted by 소셜미디어의 촌철살인마 독설닷컴

여행의 인문학

 

1> 들어가며, 여행은 역설이다

 

세계 4대 여행서를 아는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이븐바투타의 <이븐바투타 여행기>, 오도릭의 <동방기행>이다. 그렇다면 이 4대 여행서의 공통점을 아는가? 바로 오류와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이다.

 

시인에게 ‘시적 허용’이 있다면 여행가에겐 ‘여행적 허용’이 있다. 더 멀리 갈수록 뻥이 더 심해진다. 사실 4대 여행서는 실제 작가가 쓴 내용인지 신빙성에도 의문이 간다. <동방견문록>은 마르코 폴로와 함께 수감된 작가가 받아 적은 것이고 <동방기행>은 오도릭이 임종 직전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구술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여행서들은 수백 년 동안 여행서의 고전으로 군림했다. 왜일까? 그것이 여행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흔히 여행은 '새로운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새로운 눈'은 '아름다운 오해'인 경우가 많다. 여행은 의미 있는 오해다. 우리는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거짓말에 환호하고, 타인에 대한 오해에서 자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힌다.

 

섬에 가면 다들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든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섬의 시간은 육지의 시간보다 두 배 빠르다. 해의 시계와 달의 시계(물때)가 함께 흐르기 때문이다. 해의 시계에 맞춰 농사도 하고 달의 시계에 맞춰 물질도 해야 한다. 그 바쁜 시간을 뒤로 하고 우리는 여유를 되찾는다.

 

여행은 여행객을 맞는 사람에게도 오해다. 제주도지사가 제주도를 자랑하며 1등부터 10등까지 꼽는 것이 무엇일까? 그 대답 중에 요즘 젊은 사람들이 제주도를 찾는 이유 열 가지 중 몇 가지나 겹칠까? 여행은 늘 새롭게 갱신되는 오해다.

 

여행의 프로를 여행가라 하고 우리는 그들을 지표로 삼는다. 하지만 그들의 여행은 일하러 가는 것이다. 반면 우리의 여행은 일하다 쉬러 가는 것이다. 우리의 여행이 본질이고 그들의 여행은 여행의 탈을 쓴 일이다. 그들의 감동은 상상이고 우리의 감동은 실질이다.

 

여행은, 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것이 본질일 수도 있다. 우리는 캠핑을, 도시를 떠나서, 자연으로 가는 것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캠핑의 본질은, 도시로 돌아오는 것이다. 자연을 보러 가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돌아올 도시를 확인하는 것이다.

 

여행의 본질도 돌아올 일상일 수 있다. 우리는 여행이라는 일탈로 일상에서의 이탈을 억제한다. 여행이 설렐 수 있는 것은 돌아올 일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여행에서 위안 받고 일상에서 안도한다.

 



2> 여행은 ‘본풀이’다.

 

세계 4대 여행서로는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 이븐바투타의 <이븐바투타 여행기>, 오도릭의 <동방기행>이 꼽힌다. 오류로 가득 차 있다는 것과 함께 또 다른 공통점은 성직자가 쓴 여행기라는 점이다. 혜초는 불교 승려, 오도릭은 프란치스코회 수도사였고 이븐바투타는 술탄의 명을 받고 여행기를 썼다(마르코 폴로는 상인).

 

또한 최초의 여행 패키지 상품은 성지순례 여행이었다. 가장 성스러운 여행과 가장 상업적인 여행이 동시에 출발한 것이다. 성지를 순례한다는 최고의 여행 핑계였다. 이 패키지 상품에는 심지어 ‘원 플러스 원 서비스’도 있었다.

 

여행은 여행지의 사람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다. 그들을 이해하기에 가장 좋은 창구는 바로 신화와 종교다. 이를 통해 그들이 무엇을 기원하는가, 무엇을 두려워 하는가, 근원을 어떻게 설명하는가(본풀이)를 알 수 있다.

 

북방계 신화(천손강림신화)를 가지고 있는가, 남방계 신화(바다를 건너오거나, 알에서 태어나 나라 건국)를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민족의 이주 계보를 알 수 있다. 신화와 전설 속에서 근친상간에 대해 어떻게 재해석을 하는지 들여다보는 것도 흥미롭다. 창조와 유지와 파괴(재탄생, 배설)를 어떻게 설명하느냐를 보면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3> 여행가의 레벨

 

신뢰하는 여행가는 세 종류다. 하나 제너럴리스트. 둘 스페셜리스트. 셋 아카데미스트.

 

하나, 여행은 많이 다녀본 사람이 장땡이다. 정보는 비교에서 나온다. 많이 다니면 모든 정보가 상대평가를 통해 정밀해진다. 이를테면, 히말라야와 코카서스와 알프스와(혹은 일본 알프스와) 태백산맥을 두루 다녀봐야, 비로소 그 산을 설명할 수 있다.

둘, 여행은 오래 머문 사람이 또한 장땡이다. 기실 여행가의 깨달음이란 것은 오해의 합에 지나지 않는다. 멈춤을 통해 그 오해는 비로소 이해로 바뀐다. 친한 현지인을 소개시켜 줄 정도가 되어야 여행가다.

셋, 가보지 않은 여행가도 때로 도움이 된다. 바로 학자들이다. 여행지에 대한 충분한, 아니 충분하고도 남는 사전지식을 바탕으로, 여행지에서 지식을 확인하고 갱신하고 배신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재미지다.

 



4> 10명의 여행가(그리고 여행서)

 

4-1) 성직자의 여행 - 오도릭의 <동방기행>

: 오도릭은 프란체스코회 수도사였다. <동방기행>은 베네치아에서 서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거쳐 중국에 갔다가 중앙아시아로 돌아온 여정을 담았다. 후대에 문명의 기억을 좇는 것이 아니라 문명이 가장 화려하게 꽃피었던 당대에 현장을 돌았던 여행기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오류도 많지만, 인문지리, 생활풍습, 물산, 종교, 유적·유물을 꼼꼼히 기록했다.

 

오도릭 전에 카르피니, 뤼브뤼키, 마리뇰리 등이 여행을 떠났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오도릭도 프레스터 존(동방 어딘가의 그리스도 국가)를 찾아서 떠났다. 기독교적 독선이 곳곳에 나타난다. ‘무함마드는 지옥의 자식, 그 신봉자는 위선자와 가해자,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상반된 종교’라며 이슬람교를 오독한다.

 

4-2) 역사가의 여행 - 사마천의 <사기>

: 사마천은 ‘붓수저’를 들고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장서가였다. 하지만 고답스럽지 않았다. 다양한 학문을 접하고 각기 장단점을 분석하고 취할 것만 취했다. 사마천은 아버지로부터 ‘얽매이지 않는 정신’을 계승했다.

 

장서가인 아버지 덕분에 사마천은 금문과 고문에 능통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외국어에 능통한 셈이다. 그래서 어떤 판본이든 읽을 수 있었다. 독서가였지만 사마천의 아버지는 ‘현장 독서’를 중시했다. 그런 아버지의 후원 덕분에 사마천은 중원과 변경을 유람하고 <사기>를 남길 수 있었다. 노신은 후에 ‘<사기>는 역사가의 절창이요, 가락 없는 (굴원의) 이소다’라고 평했다.

 

4-3) 혁명가의 여행 - 김구의 <백범 일지>

: 백범 김구 선생은 대한민국 최고의 무전여행가였다. 일본군 장교를 살해하고 옥에 갇혔던 백범 선생은 탈옥을 주도한 후 탈옥 동기들을 찾아 동가식서가숙하며 전국을 유람했다. 대접이 섭섭했던 사람은 따로 메모하기도 했다. 그렇게 삼천리 금수강산을 둘러본 김구는 최고의 독립운동가가 되었다.

 

호치민의 세계여행은 백범의 여행과 대비된다. 세계 여러 나라를 살펴보며 그는 여러 이념이 현지에 어떻게 안착하는지를 살폈다. 보편성 속의 특수성을 구현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사회주의와 민족주의를 적절히 결합해 베트남 독립을 이룩했다. 호치민과 체 게바라가 공통적으로 좋아한 책이 있다. 지도책이었다. 그들은 여행을 통해서 지식을 지성으로 승화 시켰다.

 

4-4) 여행가의 여행 - 토니 휠러 <론리 플래닛>

: 수많은 여행서 중에서 <론리 플래닛>이 특별했던 이유는 ‘다른 여행자들이 쳐다보지 않는 여행지를 재발견하는 것’을 주제로 삼았기 때문이다. 1972년 성탄절, 시드니에 도착한 그들에게는 꼴랑 27센트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험을 계속해서 <론리 플래닛>을 수천만 달러의 여행그룹으로 키워냈다.

 

환갑을 넘긴 지금도 여전히 여행자로 사는 부부를 지난해 제주에서 만난 적이 있다. ‘어디가 가장 좋았나’ ‘어디가 가장 끔찍했나’ ‘어디를 여행해보고 싶나’ 등등 질문이 쏟아지는 가운데 부부는 해초무침을 오래도록 씹으며 조용히 화순항을 바라보았다. 이들의 은은한 눈빛은 마치 ‘여행은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4-5) 소설가의 여행 - 김훈 <자전거여행>

: 작가의 여행기는 감성으로 꽉 차 있다. 김훈도 그렇다. 걸작 <자전거 여행>을 읽다보면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진도편을 읽으면 <자전거여행>에 이미 그의 소설 <칼의 노래>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칼의 노래>는 빙의다. 이순실의 탈을 쓴 김훈이 임진왜란을 체험하고 있다. 답사를 통해 역사를 온몸으로 체험한 후 그런 감성이 나오는 것이다.

 

4-6) 시인의 여행 - 이문재 <마음의 오지>

: 시인들은 오지를 좋아한다. 그러나 진짜 오지는 마음 속에 있다. 내 마음이 사람들을 밀어내고 오지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문재 시인은 <마음의 오지>에서 ‘마음속에 마음의 주인조차 어쩔 수 없는, 외면하고 싶은,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싶은 오지들이 있었다’라고 썼다. 여행과 오지에 대한 성찰을 얻을 수 있다.

 

4-7) 모험가의 여행 - 윤승철, <무인도에 갈 때 당신이 가져가야 할 것>

: 무인도에 간다는 것은 낭만적이지만, 현실은 역설적인 부분이 있다. 뭔가를 버리고 가야하는 곳인데 그러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더 역설적인 것은 무인도에 더 많이 가 본 사람이 더 많은 준비를 하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무인도에서 닥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뭔가를 버리고 무인도에 가는 이유와 배치된다. 이것이 무인도에 가는 사람의 딜레마다.

여행은 역설이다. 무동력 요트 세계일주를 한 김승진 선장은 ‘애완동물도 데려갈 수 없다’는 것이 세계일주의 규칙이라고 했. 심리적으로 의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행의 본질은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기’가 아닐까 싶다. 자기 자신에게 의지할 수 없어서 우리는 여행서를 찾고 여행사를 찾는데 여행에 대한 훈련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는 훈련이 아닐까 싶다.

 

4-8) 장애인의 여행 - 홍서윤 <유럽,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여행은 의지의 문제다. 홍서윤 씨와 같이 캠핑을 해보았다.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캠핑을 하겠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해낼 수 있었다. 물을 마시려고 하지 않는 말에게는 열 명의 사람이 한 마리의 말도 먹이지 못하지만 물을 마시려는 말은 한 사람이 열 마리의 말도 이끌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4-9) 기자의 여행 - 독설닷컴 ‘말라카 기행’ ‘메이지기행’

: 학자의 여행은 답을 남기지만 저널리스트의 여행은 질문을 남긴다. 말라카기행은 좋은 질문을 제법 건진 멋진 여행이었다. 마호메드의 도시 쿠알라룸푸르, 정화의 도시 말라카, 쑨원의 도시 페낭, 마하티르의 도시 랑카위가 보여준 것은 ‘이슬람과의 공존 가능성’이었다. 이 여행에서 처음 건진 질문은 ‘말라카해협에 장보고 장군이 다녀갔다면 우리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까?’라는 것이었다. 무역풍과 해류의 방향 때문에 아마 불가능했겠지만 ‘그가 이곳을 다녀갔다면 우리의 상상력이 얼마나 확장되었을까?’하는 생각을 하니 깊은 아쉬움이 남았다. 서구 열강이 이 해협을 각축할 때 그런 사실이라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메이지 기행은 다크투어리즘이라는, 마음이 무거운 여행이었다. 왜 우리는 근대화에 실패하고 일본은 성공할 수 있었는지를 일본 메이지유신 유적지를 돌아보며 헤아려 보았다. 여행 전에 읽은 책이 많지 않았지만 여행을 통해 일본 근대화의 퍼즐이 맞춰졌다. 더불어 아베의 꿍꿍이도 읽어낼 수 있었다.

 

4-10) 섬 여행가 - 강기태 ‘섬청년탐사대’

우리가 왔을 때보다 더 나은 상태를 만들어주고 가는 여행, 여행지를 새롭게 발견하는 눈을 갖는 여행을 ‘섬청년탐사대’와 함께 체험할 수 있었다. ‘섬의 쓰레기를 줍는 여행’에 청춘들이 몰려들었다. 여행의 마지막 단계는 여행을 통해 뭔가를 만들어내는 ‘창조 여행’이 아닌가 싶다. 백지상태와 마찬가지인 우리나라의 섬은 여행가들이 상상을 구현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다.

 



5> 여행 대신 권하는 여행서 - 머리로 하는 여행

 

CBS 정혜윤 PD는 <여행, 혹은 여행처럼> : 인생을 ‘관광’에 비유하지 않고 여행에 비유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우리가 여행을 할 때 사람과 사물과 공간을 대하듯 ‘지금 여기’에서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여행지에서 목표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더 알고 더 느끼는 데서 기쁨을 느끼듯 인생을 대하라.

 

피에르 바야르,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 :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썼던 저자가 이번에는 ‘불륜을 저질렀을 때 알리바이를 대려고 여행지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듯’ 여행하지 않은 여행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법을 풀어냈다. 전작이 책을 읽지 않는 읽기, 즉 읽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책읽기에 대한 비판이었듯, 이 책 역시 여행했으나 여행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여행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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