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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고재열 기자입니다. 이메일 gosisain@gmail.com 트위터 twitter.com/dogsul 페이스북(페이지) facebook.com/kojaeyoul 페이스북 페이지는 facebook.com/kojaeyoul '믿지마 연애상담' https://story.kakao.com/ch/dogsuldotcom/app 독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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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했던 전인권의 거침 없는 인터뷰

B급 좌판 위원회 | 2015.10.07 13:21 | Posted by 소셜미디어의 촌철살인마 독설닷컴

주) 10년 전인 2005년에 했던 인터뷰다. 지면에 게재되지 않은 내용까지 담은 풀버전이다. 오늘 가수 생활 40년을 결산하는 인터뷰를 하러 가는 길에... 지난 인터뷰를 찾아보았다. 다시 보아도... 전인권은 지구별 사람이 아닌 것 같다.  



가수 전인권이 30여 년간의 음악 인생을 회고하는 자서전을 냈다. <걱정말아요, 그대>라고 이름 붙인 이 자서전에서 전인권은 처음 밴드 생활을 시작했던 열아홉 살로 되돌아가 자신의 음악인생, 음악에 대한 생각, 음악을 통해 만난 사람 이야기를 풀어냈다. 음악에 대한 기억을 중심으로 시시콜콜한 기억까지 주워담은 글은 ‘전인권스러운’ 필치로 풀려 있었다.

그러나 단 한 줄, ‘은주가 있다면 ‘애쓰셨어요, 전인권 만세’ 문자 하나 왔을 텐데…’라는 문장이 문제였다. 그의 자서전에 대한 언론의 인터뷰는 배우 이은주와의 관계를 캐어묻는 데 집중되었다. 한국 록의 역사를 개척해 온 30여 년의 음악 인생 이야기는 스캔들에 묻혀 대마초 연기처럼 사라졌다.


<걱정말아요, 그대>를 계기로 전인권의 음악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권이 라이프’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열아홉 살 전인권이 매일 올라 음악 수련을 쌓던 삼청동 공원에 함께 올랐다. ‘전인권 유적지’에서 세 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주저 없이, 거리낌 없이, 부끄러움 없이 자신의 삶과 음악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삼청동 토박이인 줄 몰랐다. 왠지 삼청동은 전인권과 잘 안 어울리는 것 같다. 

삼청동을 몰라서 하는 얘기다. 산이 있고, 변두리이면서도 도심이 가까운 삼청동은 록과 잘 어울린다. 사운드 개념을 갖기에 좋다. 내 음악의 고향이 바로 여기다. 


기억이 새로울 것 같다. 

참 좋다. 조금 변하기는 했지만 30년 전 그대로다. 예전에 이곳은 아베크족들의 데이트 명소였다. 수풀 속에서 밀애를 즐기던 연인들이 내 노래가 끝날 때마다 박수를 보내주었다. 그 ‘얼굴 없는 박수’를 위해서 매일 밤 나만의 노래를 준비해 갔다. 


어떤 노래들을 불러주었는가? 

(그는 대답 대신 노래로 <오 마이 러브>와  <그린 그린 그래스 오브 홈>을 들려주었다)


여기서 ‘삼청공원의 왕족’(그가 혼자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 감탄한 록밴드들이 붙인 별명) 전설이 만들어진 것인가? 

아니다 더 올라가야 한다. 저기 왕벚나무 있는 곳이다. 앵두보다 큰 버찌가 열리는 저 나무 밑에서 노래를 불렀다.


담이 둘러져 있어서 가기 힘들 것 같다. 

한번 넘어서 가보자. 넘을 수 있을 것 같다(비록 매니저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그는 직접 담을 넘어 현장을 확인시켜 주었다). 


여긴가?

그렇다. 이거 봐라. 왕버찌 나무다. 정말 앵두보다 알이 굵지 않나?(그는 잠깐 인터뷰를 멈추고 정신없이 버찌를 따 먹었다). 나는 사실만 쓴다. 한번 먹어 봐라. 정말 맛있다(그는  바닥에 떨어진 버찌를 주워 흙을 털어 기자에게 권했다).


책은 갑자기 왜 내게 되었나? 

예전부터 생각해 왔다. 써보고도 싶었고 주변에서도 권했다. 특히 김민기 형님이 권했다. 나 보고 표현력, 특히 비유가 좋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인터뷰를 책으로 내려고 했는데, 어찌어찌 하다보니 직접 쓰게 되었다.


책은 자주 읽나? 소설 같은 것. 

소설은 6학년 때 까지다. 그 이후로는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기억력이 좋은 것 같다. 매우 구체적이다. 

노래가 있으니까. 당시 내가 들었던, 혹은 불렀던 노래를 중심으로 기억할 수 있었다.


책을 보니 예전에도 인기가 좋았던 것 같다. 

책에서는 좀 겸손한 척 했는데, 진짜 인기 좋았다.


책을 쓰는 데 얼마나 걸렸나? 

은주 죽고, 열흘 동안 술 마시고 쓰기 시작했으니까, 한 두 달 보름 걸린 것 같다.


책의 절반 이상이 대마초에 할애되어 있다 .   

대마초가 ‘옳다’고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냥 ‘나는 이렇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우리가 버섯을 먹는데, 버섯이 옳아서 먹는 건 아니지 않는가.


대마초와 관련된 추억이 많을 것 같다. 

내게 형을 선고한 판사 이름까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선고 받을 때 한참 그 판사를 째려봤다.


책을 보면 대마는 괜찮은데, 다른 마약은 안 된다고 썼다. 무슨 차이인가? 

대마는 힘을 받는 만큼만 빚을 지게 되는데, 히로뽕 등 다른 마약은 힘을 받는 것 보다 몇 배 더 우리 몸이 빚을 지게 된다. 그런 것을 하면 금방 종점이 보인다.


대마초를 피우면 무엇이 좋은가? 

대마초는 ‘기분 좋은 쇼크’를 준다. 대마초를 피우고 거울을 보면 진실한 나를 대면할 수 있다. 대마초는 음악을 들을 때 좋은데 영화를 볼 때도 좋다. 스토리를 거의 몰라도 된다.


진실한 나를 대면한다? 

후지게 거짓말하는 나, 우유부단한 나, 형편없는 나를 대면하게 된다. 그 나를 이겨내기 위해서 나는 많은 노력을 했다. 


대마초 말고, 또 쇼크를 받는 것이 있는가?

좋은 음악이다.


대마초 이야기 때문에 말이 많을 것 같다. 

애들은 보면 안된다. 그들은 대마초를 피워도 될만큼 자아가 승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19세 이상의 성인 남녀에게만 팔기로 했다(옆에 있던 출판사 직원이 그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하자, 전인권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내용이라고 고집했다).


맨날 옷 입는 스타일이 똑같다. 

내가 바쁜 사람이라 그렇다. 겉으로는 한가해 보이지만 사실 나 무지 바쁜 사람이다. 옷 같은 것 가지고 신경 쓰고 싶지 않다.


갈아입기는 하는가? 좀 지저분해 보인다. 

갈아입는다. 확실하게 갈아입는다. 스타일이 똑 같아서 그렇지 옷은 많다. 청바지와 자켓 모두 열 벌 정도씩은 있다. 그리고 나 잘 씻는다. 난 지저분하지는 않다. 좀 너저분할 뿐이다.


그래도 옷이 명품 브랜드인 것 같다. 

나름대로 다들 명품이다. 생각보다 내가 명품이랑 잘 어울린다. 사람이 명품이라 그런 것 같다.


첫사랑 여인부터 여자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존 레넌에게는 오노 요코 한 명뿐이었는데, 전인권에게는 왜 이렇게 여자가 많은가?   

모르겠다. 활동 공간이 바뀌면 어느 여자도 새로운 여자로 바뀌어 있었다. 내가 여자들한테 인기 있는 스타일인 것 같다.


여자를 좋아하는 편인 것 같다. 

좋아한다. 내가 더할 수 없이 자유로운 상태가 되면 스커트만 살짝 스쳐도 엄청난 자극을 느낀다. 그럴 때면 슬쩍 그 여자를 눈으로 만진다. 눈으로 애무하는 건 정말 엄청난 경지다.


여자가 느끼해 하지 않을까? 

그건 나하고 상관없는 일이다. 난 지금 훌륭한 일을 해냈으니까. 그 다음은 내 맘이다. 


배우 이은주와의 사이에 대해서 말들이 많다 .   

말이 통하는 아이였다. 은주를 위해서 시나리오를 한 편 썼다.


어떤 내용의 영화였나? 

<졸업>같은 낭만적인 내용의 영화다. 병에 걸려 괴로워하는 주인공을, 이전에 주인공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주변 사람들이 도와준다는 내용이다. 주인공을 낭만적으로, 그러나 살짝 ‘맛이 가 있는’ 사람으로 묘사했다.


직접 연출도 할 생각이었나? 

홍상수 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은주가 그건 좀더 생각해보자고 했다.


지금 사귀는 여자친구는 있는가? 

안 가르쳐 주겠다. 며칠 전까지는 이야기해줄 수 있었는데, 지금은 불투명해졌다.


싸웠나? 

때렸다.


왜?

맞을 짓을 했으니까. 


무슨 짓? 

나는 여자를 사귈 때 원칙을 정해둔다. 주변에서 뭐라고 떠들던 간에 진실은 너하고 나 사이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각인시켜둔다. 그런데 그것을 어겼다.


어떻게 어겼나? 

나를 의심했다.


그래서 때렸나?

사실 나 여자를 잘 때리는 사람은 아니다. 처음엔 뺨만 때렸는데 인정을 안 해서 몇 대 더 쥐어박았다. 이렇게(주먹을 휘두르며 흉내)


때린 것이 효과는 있었나? 

없었다. ‘때려서 나를 변화시킬 생각은 하지 마라’라고 하더라. 여자가 갑자기 무서워졌다.


남녀가 사귈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서로 자기 꺼를 지켜야 한다. 상대방이 분명히 남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CF 때문인지, 요즘 중고생들한테도 인기가 많은 것 같다. 

얼마 전에 고등학교 행사에 한 번 갔는데, 난리였다. 나보고 잘생겼다고 하더라.


CF에 나온 ‘인권이 라이프’라는 말이 화제다. 당신이 추구하는 삶은 무엇인가?아름다운 퇴폐다.


‘아름다운 퇴폐’란 무엇인가? 전인권식 ‘아타락시아’인가? 

하고자 하는 대로 해도 양심에 하나도 거리낌 없는 쾌락이다.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진정 섹시한 다리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섹시한 다리로부터 자유로워졌을 때 진정 섹시한 다리를 알아볼 수 있다.


퇴폐라는 말이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기본적으로 나 자신이 퇴폐적인 인간이 아니다. 나는 내가 할 일을 다하고, 질서를 따라 누린다. 자유를 누리려면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질서’를 따르면 문제가 없다. 가끔은 무조건적인 자유를 누리고 싶기도 하다.


잘 모르겠다. ‘아름다운 퇴폐’의 예를 들어 달라.   

섹스다. 이제 시작하고 끝내는 것을 알게 되었다. 3~4일 정도 자유스러운 기간이 있다. 양심적으로 괴롭지 않아도 되는 기간이 있다.


‘아름다운 퇴폐’라는 조어가 재미있다. 아름다운 불륜도 해본 적 있나? 

내 노래 가사 중에 ‘너 오늘밤에 가지 마라. 넌 여자가 아니다. 시인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나는 여자가 아니라 시인을 만난 것이다. 


전인권이 피우면 바람도 바람이 아닌 것인가?  

사랑이지. 그걸 바람이라고 부르면 곤란하다. 진짜 억울할 때가 많다.


대마초도 ‘아름다운 퇴폐’인가? 

대마초는 퇴폐가 아니다. 모든 음악을 듣기 좋게 만들어주는 ‘행복한 연기’다.

 

요즘 생활은 어떤가? 

요즘 외롭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얼마 전에 새벽에 깨어나서 꺼이꺼이 운 적이 있다. ‘엄마 나 너무 힘들어’라고 말하며 실컷 울었다. 한동안 우울했다.


울릉도에 자주 간다고 들었다. 

친한 이장희 형님이 있어서다. 울릉도는 원시적인 느낌이 있어서 좋다.


이장희씨와의 관계도 그렇고 보통 가수들은 남을 잘 안 챙기는 특성이 있는데(나쁜 의미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너무 함몰되어서 그런 것 같다), 책을 보니까 의외로 사람들을 참 잘 챙기는 것 같다. 이름과 인상을 구체적으로 기억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사람을 챙기면 내가 더 기분이 좋아진다. 사람 챙기는 게 체질에 맞는 것 같다.


얼마 전에 도올 김용옥과 콘서트를 함께 했다. 맡이 ‘지음’을 만난 것 같이 보였는데, 또 코드가 맞는 사람들이 있나? 

김정환 시인과 백원담 교수와 친한 편이다.


김정환 시인은 이해가 가는데, 백원담 교수는 잘 이해가 안 간다. 백 교수는 전형적인 논객 스타일이다. 감성적인 당신과 잘 안 맞을 것 같다. 

의외로 잘 맞는다. 둘이 보기만 하면 웃는다. 며칠 전에도 여자 한 명 소개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자녀는 어떻게 되는가?

아들 하나 딸 하나다. 아들은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고 딸은 올해 스물넷, 아니 스물셋이다. 딸이니까 한 살이라도 어리게 써 달라.


혹시 자녀를 때려 본 적이 있는가? 

공식적으로 아들은 네 번, 딸은 세 번 때렸다.


비공식적으로는 얼마나 때렸나?

그건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서로에게 신뢰가 있다. 그 신뢰가 중요하다. 서로 암묵적인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어렸을 때 많이 맞았나? 

둘째 형한테 많이 맞았다. ‘내일부터 안 그러겠다’ 그러면 그만 맞는 건데, ‘내일 일은 나도 모르지’라고 해서 죽도록 맞았다.


자녀들이 자신을 닮았나? 

아들이 고집이 세다. 지금 석 달 동안 같은 이유로 싸우고 있다.


무슨 이유인가? 

일기를 안 쓰려 든다. 앞에 앉혀 놓고 일기를 쓰게 만드는데 그러면 ‘나는 일기 쓰는 것이 정말 싫다. 왜 쓰냐면 숙제니까 쓰는 거다. 나는 지금 아버지가 억지로 쓰라니까 쓰고 있는 것이다’ 뭐 이런 식으로 쓴다.


딸은 자신을 닮았나? 

그런 것 같다. 딸은 지금 그림에 미쳐 있다. 나는 음악과 미술이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둘 다 시작은 수학이다. 그리고 따라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음악 얘기를 해보자. 수많은 히트곡 중에 내 인생을 노래한 곡을 꼽자면? 

<행진>이다. 하나 더 꼽으라면 <걱정말아요, 당신>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대부분 내 노래에는 내 성격이 담겨있다.


‘한국 록의 대부’라는 말이 따라 다닌다. 부담스럽지 않나? 

‘액면’이 늙어보여서 그런 것 같다. 대부는 과분하고 ‘록의 이정표’라고 불러준다면 달게 듣겠다. ‘말 없는 록의 이정표’, 그래 그게 낫겠다. 어느 날 보니 <행진>이 있었다. 그래서 반가웠다. 그렇게 기억해주면 고맙겠다.


자신의 음악적 역량 중에 가장 뛰어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흠...마디 개념인 것 같다. 천부적이다.


들국화 1집은 한국 록음악, 아니 한국 대중음악 전체를 통틀어서도 명반으로 평가된다. 어떤 생각으로 만들었나? 

영악했다. 모든 밴드가 잘하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좋게 하려고 애썼다.


잘하는 것하고 좋게 하는 것하고 뭐가 다른가? 

잘하는 것은 테크닉에 충실한 것이고, 좋게 하는 것은 자기 자신만의 것을 찾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나름의 형태를 만들었다.

 

<행진>이나 <돌고 돌고 돌고> 같은 노래는 아직도 후배 가수들이 공연 때 애창하는 것 같다.  

노래에도 고전이 있는 법이다. 후배 가수들이 콘서트에서 부르는 것을 봤는데, 잘 못 부르는데도 분위기가 산다. 노래가 좋아서인 것 같다. 그 노래들에는 맑은 흥분이 있다.


성량이 풍부하다.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 

후천적인 노력에 의한 것이다.


성량은 어떻게 키웠나? 

산에서 했다. 나는 산이 만든 가수다. 산에 오르면 사람이 작아진다. 계속 노래를 부르다 보면 어느 순간 산이 쩌렁쩌렁 울리는 순간이 있다. 그럼 된 거다. 


연습 장소로 권할만한 산은? 

설악산이 좋다. 설악산은 계속 변해서 지루하지가 않다. 특히 눈 덮인 설악산이 좋다. 흔들바위 지나서 울산바위 정도까지 가면서 불러주면 아주 좋다. 1996년인가, 겨울 설악산에 올라 창을 배웠다. 서편제였다.


예전부터 클럽문화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미사리에 록을 연주할 수 있는 ‘전인권 클럽’과 ‘아테네’를 만들었다. 나 이후로 미사리 카페에 드럼세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클럽공연을 통해 후배들이 실업 상태를 벗어나 안정적으로 음악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고 싶다. 이거 대단히 중요한 거다. 꼭 써 달라. 내가 20년 전부터 주장하는 것이다.  


후배 가수 중에 눈여겨보는 가수가 있는가? 

오브라더스다. 발군이다. 음악이 세련되었다. 블루스를 참 재미있게 한다.


요즘 후배 가수들을 보면서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마음이 급해진 것 같다. 노래를 들어보면 느껴진다. 빨리 알려지면 빨리 잊힌다. 그걸 알았으면 좋겠다.


후배 가수들에게 자주 하는 충고는 무엇인가? 

자아를 쌓으라고 말한다. 나는 나름으로 분석해서 그걸 해냈다. 노래에 인생이 담긴다. 인생이 경쟁력이 있어야 노래도 경쟁력이 있다.  

 

책에 나온 노래들로 스토리 앨범을 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생각이다. 그러나 그것에 앞서 일단 나의 ‘삼청동 사운드’를 정리하고 싶다. 나이가 들면서 내 사운드가 신촌블루스의 사운드와 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내 소리는 좀더 자연스럽고 자유스러워지고 더 내지르게 되었다.


전인권의 인터뷰는 거침이 없었다. 그는 장점이든 단점이든,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한 치의 주저함이 없었다. 이런 솔직함이 결국 그에게 설화를 입히고 말았지만, 그는 여전히 담담했다. 발리와 동행했다가 먼저 귀국한 그의 매니저는 그가 큰 동요 없이 마지막 원고 손질에 매달리고 있다고 했다.


자신의 이미지에 깊은 생채기를 입혔지만, 오히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은주가 다시 사람들 기억 속에 되살아 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고 그의 매니저는 전했다. 자신과 이은주의 관계를 레옹과 마틸다라고 표현했던 그는 이제 콰지모도가 되어 에스메랄다 은주의 명복을 빌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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