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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고재열 기자입니다. 이메일 gosisain@gmail.com 트위터 twitter.com/dogsul 페이스북(페이지) facebook.com/kojaeyoul 페이스북 페이지는 facebook.com/kojaeyoul '믿지마 연애상담' https://story.kakao.com/ch/dogsuldotcom/app 독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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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전통문화의 거대한 암호 체계 '부적'

B급 좌판 위원회 | 2015.05.09 01:14 | Posted by 소셜미디어의 촌철살인마 독설닷컴




주) 10년 전 썼던 기사인데...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보면서 우리 전통 문화를 어떻게 현대화 시킬지 고민해 보다가 생각나서 다시 꺼내 보았습니다. 


복을 부르고 재앙을 쫓는다는 부적·현대 문명과 부적의 거리는 멀어 보인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문화인류학자 로버트 래드필드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병이나 불행을 주술에 의존하는 경향이 오히려 강해졌다. 그 형식은 달라질지라도 부적을 사용하는 양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은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불안 심리가 강해지고 소외감이 커지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가 ‘위험 사회’가 되어가는 것도 현대인이 주술에 의존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신과 통하는 도구이자, 신이 자신의 편임을 믿게 하는 부적에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유교 문화가 사회 전반을 지배했던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유교적 의미를 함축해서 지은 경복궁을 마무리한 것은 주술적 장식이었다. 막새기와와 건물 벽, 창살문양까지 어느 것 하나 주술적 의미를 담지 않은 것이 없었다. 유교적 통치 이념을 극대화한 경복궁은, 불의 기운을 끊는 해태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기독교 문화가 들어오면서 부적은 철퇴를 맞게 된다. 부적을 쓰는 것이 버려야 할 미신으로 치부되면서 부적 문화는 급속히 쇠퇴하기 시작한다. 이웃 중국과 일본에서는 부적이 일상적으로 쓰이고 밖으로 드러내놓는 것에 반해 우리의 부적 문화는 음지로 숨어들게 되었다.




잊혀가는 부적 문화를 다시 되돌리려는 노력이 시작되고 있다. 그 기점이 되는 것은 바로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하 진흥원)의 문화 원형 디지털 콘텐츠화 사업이다. 진흥원은 이 사업의 일환으로 우리 부적의 디지털 콘텐츠화를 실시했다. 사업을 주관한 코리아비주얼스는 4천여 점의 부적을 디지털 자료로 변환했다.


미신의 산물로만 여겨지던 부적이 어떻게 문화 원형으로 대접을 받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코리아비주얼스에 4천여 점의 부적 자료를 제공한 김민기 화백에게서 찾을 수 있다. 우리 부적을 자신의 추상화 작업에 응용한 김화백은 부적의 ‘문화적 효험’을 십분 만끽했다. 추상화를 그리는 그에게 암호화한 추상 체계인 부적은 많은 영감을 주었다. 그는 “부적의 코드는 그대로 현대 미술의 특징인 대중성·다양성·익명성과 직결된다. 부적은 작가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부적이 미신이 아니라 문화라고 주장한다. 부적과 부작의 주술적 의미를 이해하면 우리 조상들의 가치관을 이해하고 우리 전통 문화를  해석하는 혜안을 갖게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부적을 믿고 안 믿고는 개인의 취향 문제다. 그러나 부적의 민속·고고학적 가치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부적은 우리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키워드다. 미신을 믿고 안 믿고의 문제를 뛰어넘는다”라고 말했다.


그가 부적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50년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홍익대 서양화과에 재학 중이던 그는 스승인 김환기 화백의 권유로 우리 전통 문화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추상화 작업을 하던 그의 눈을 붙들어 맨 것은 바로 부적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추상화에 응용할 생각으로 부적을 모으기 시작했다. 10년 정도 모으면서 부적의 무한한 세계에 눈을 떴다.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부적 연구를 시작했다”라고 회고했다. 





"한국 부적만큼 아름답고 힘찬 글자는 없다"


우리 부적이 가진 조형미에 빠진 것은 김화백만이 아니었다. 일본의 유명 사진작가 스기우라 고헤이 역시 우리 부적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김화백이 소장한 부적들을 본 그는 “세계 각 문자의 타이포그래피 작품을 찍었지만 한국의 부적만큼 아름답고 힘찬 글자는 보지 못했다. 문자이면서 문자를 해체한 것이 이채롭다”라고 말하며 우리 부적 사진으로 달력을 제작했다. 


5천여 점의 부적을 모으면서 김화백은 부적에 담긴 우리 문화의 다양한 사상 체계를 발견하게 되었다. 우리 고유의 민간 신앙을 비롯해 불교·도교·유교의 가치관이 부적 속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만물에 영이 있다는 애니미즘과 토템 신앙에서 출발한 우리 부적 문화에는 다양한 설화와 민담에 녹아 있다.


기록에 처음 등장하는 부적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천부인(天府印)’이다. 환인이 아들 환웅에게 주어 세상을 다스리게 했다는 이 천부인은 신의 도움과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상징적 징표라는 점에서 부적의 효시라 할 만하다. 이후 도교 등의 영향을 받으면서 부적은 본격적으로 체계를 갖추기 시작한다. 음양가와 팔괘 따위가 부적에 나타나고 천부경이나 산해경의 체계가 응용되기 시작했다.


민간 신앙과 결합하면서 기복신앙적인 변형을 거친 불교도 부적이 발전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최초의 불교 부적은 바로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이다. 부적과 무관할 것 같은 유교 역시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충효사상이나 도덕심을 고취하는 시구를 이용한 도덕부는 부적에 미친 유교의 영향을 단적으로 나타낸다.





다양한 종교와 사상 담겨


신앙적 결합뿐만 아니라 철학·천문학·기상학·역사학·의학·군사학·교육학·심리학 따위 다양한 분야의 지식도 우리 부적 문화를 풍부하게 만들었다. 수직적 사고의 체계인 삼재일리(하늘과 땅과 사람의 이치는 같은 이치로 통한다) 사상과 수평적 사고의 체계인 음양오행 사상은 우리 부적의 근간을 이루게 만들었다. 특히 조상들의 천문 지식은 우리 부적이 별자리와 관련해 복잡한 체계를 갖추는 데 일조했다. 


우리 부적은 크게 복을 비는 ‘기복부’와 사악한 악귀를 물리쳐 재앙을 막는 ‘벽사부’로 나뉜다. 행복해지려는 인간의 욕망을 반영한 기복부에는 장수부·부귀부·취직부·부부화합부 등이 있다. 벽사부에는 귀신불침부·삼재소멸부·퇴액부·재액소멸부 등이 속한다. 이외에 악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호신부·소원성취부·도덕부 등이 있다.


부적 전문가인 최인학 명예교수(인하대·문학)의 분류에 따르면 우리 부적은 표현 방식에 따라 입체로 된 ‘부작’과 평면으로 된 ‘부적’으로 나뉜다. 부적은 다시 글자 부적과 그림 부적으로 나뉘는데, 글자로는 주로 한자가 사용된다. 한자 외에 한글과 불교의 범자가 사용되기도 한다. 그림 부적은 대상이 인물이냐 동물이냐 십이지신이냐에 따라 갈래가 나뉜다. 공통으로 나타나는 점은 별자리가 자주 쓰인다는 것이다.


부적 연구한 전문 서적 한 권 없어


50년 동안 부적을 모아온 김화백은 부적이 우리 문화의 기원을 밝히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부적의 패턴을 살피면 우리 민족의 이동 경로를 역추적할 수 있다. 또 인도와 아프리카까지 이어지는 유사 부적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우리 민속·고고학의 보고지만 부적과 관련해서는 몇몇 실용서를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제대로 된 전문 서적 한 권 나온 적이 없는 실정이다. 김화백은 “부적만으로도 우리 고문자의 추적이 가능하다. 가림토글자 신지글·왕문글 같은 고어의 흔적이 부적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연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서구 명품 중에는 그들의 전통 부적 문양을 응용한 것이 많다. 우리에게도 부적은 현대에 새롭게 재탄생하고 있다. 우리 부적의 디지털 콘텐츠화 사업을 이끈 코리아비주얼스의 최형순 이사는 “우리 부적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특히 신세대는 부적을 선입관 없이 하나의 키치 문화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들에게서 부적 문화는 새롭게 꽃필 것이다”라고 말했다. 


누리꾼(네티즌)들에게 ‘뷁’이라는 글자는 ‘립싱크신’을 응징하는 부적이다. 다른 이성을 만나지 못하도록 애인 미니홈피에 사이버 부적을 몰래 숨겨두는 등 자신들만의 부적을 만들어 이용하는 이들은 새로운 부적 문화의 주인공들이다. 최이사는 “신세대에게 우리 부적을 알릴 필요가 있다. 우리 부적을 몰라 ‘Be the Reds’처럼 서양 부적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헤나 문신 같은 것도 우리 부적 문양을 발굴해서 쓴다면 훨씬 더 재미있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화백은 우리 부적의 가치를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대중문화를 보면 서양 부적이 상당히 그럴듯하게 나오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그러나 그런 부적보다 우리 부적은 훨씬 더 훌륭한 사상 체계를 갖추고 있다. 우리 부적 중에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부적을 다른 용도로 쓰면 그것을 악용한 사람이 벌을 받게 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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