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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근 고문 시설 설계 논란과 김수근에 대한 극과극 평가에 대해

달콤 살벌한 독설 | 2013.11.13 08:31 | Posted by 소셜미디어의 촌철살인마 독설닷컴

김수근에 대한 이 생각 저 생각... 


어제 김수근문화재단으로부 연락을 받았다. 

공간 사옥 매각과 관련해 기자설명회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여름-가을 김수근의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이 극과극을 진동했다.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나는 건축을 모른다. 

김수근의 건축을 평가할 자격도 능력도 없다. 

그가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인지 아닌지, 

그의 건축이 한국전통을 계승하는지 왜색이 짙은지 구분할 전문성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만 내 느낌을 전하자면 이렇다. 



1) 현장 답사 후, 남영동 대공분실은 고문시설이라는 것을 알고 설계했다는 확신이 들자 김수근에 대한 생각이 조금 복잡해졌다. 그는 고문이 이뤄진 5층만 연결되는 가파른 나선형 철계단과 전용 엘리베이터를 설계했다. 살아서 올라가는 자에게는 공포를 극대화 시키고 반죽음이 되어 내려오는 자에게는 최소한의 친절을 베푼 셈이다. 



대한민국 대표 건축가 김수근은 고문시설을 설계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11106151302


이 질문을 던진 김상수 선생의 칼럼에 대해서 나는 확실한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가설'로 봐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를 가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김수근에 대한 적극적인 해명이 나오지 않는다면 고문시설을 설계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으로. 


일단 김수근에게 이 시설(당시 치안본부 대공분실)을 의뢰한 김치열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다. 

일제 고등검사였던 그는 주요 친일파 리스트에도 오른 인물이다. 

박정희정권 시기 그가 중앙정보부 3차장일 때 서울대 최종길 교수 자살 위조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그는 검찰총장으로 영전했다. 

다시 인혁당 재건위 조작사건이 발생하고 그는 내무부장관으로 또 영전했다. 

그가 내무부장관일 때 '치안본부 대공분실'을 김수근에게 의뢰했다. 


나는 김수근이 설계한 시점(완공이 1976년)과 이 공간에서 이뤄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중요한 고문사건(이근안의 고 김근태 의원 고문,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이뤄진 시간 차이가 10년이나 되고, 고문시설의 근거로 꼽은 좁은 창은 김수근 건축의 기본 패턴이니... 이것을 가지고 고문시설인지 알고 설계했다고 보는 것은 무리라고 보았다. 


그런데 어제 홍성태 교수님과 현장을 방문해 보니 고문시설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설계했다고 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간 건축사 2명의 의견도 마찬가지였다. 


이 건물은 건물 규모에 맞지 않게 계단이 세 곳에 설치되어 있다. 

문제의 계단은 건물 뒷쪽 쪽문과 연결되어 있는 철제 나선형 계단이다. 

가파른 이 계단은 오직 1층과 5층만 연결되어 있다. 

계단옆 엘리베이터 역시 1층과 5층만 선다. 

풀어서 말하자면 고문당할 사람을 이동시키는 통로였던 것이다. 


좁은 창이 나 있는 5층은 2개의 큰 방과 다른 쪽방으로 나뉘어 있었다. 

다른 층과 달리 복도도 중앙에 나있어 수감시설을 연상시켰다. 

고 김근태 의원이 전기고문을 당한 큰 방은 여러 명이서 기구를 이용한 고문을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넓었다. 

고 박종철 열사가 사망한 고문실은 협소했다. 1~2명의 수사관이 조사할 수 있는 공간 정도였고, 작은 욕조가 있어서 물고문 정도를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5층은 복도의 위치, 각 방에 별도로 변기와 욕조를 위한 배관을 한 점, 각 방에 별도의 공조시설을 둔 점, 다른 층과 다르게 협창을 사용한 점, 방마다 설치된 흡음장치, 방의 조도조절기를 방 밖에 설치한 점 등 여러가지 이유로 고문시설인 줄 알고 만들었다고 볼 수 밖에 없었다.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5층은 다른 층과 완전 이질적인 공간이었다. 

바꿔 말하면 5층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다른 층에서는 아예 모를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뒷문으로 끌고 와서 5층으로 바로 이동해서 조사하고 다시 뒷문으로 내보내면 다른 근무자는 알 수도 없었을 것이다. 


현장 방문한 소견으로는 김수근은 고문시설인지 알고 설계했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물론 설계 당시 '치안본부 대공분실' 용도였기 때문에 김수근은 간첩을 고문하는 시설로 봤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에 간첩조사를 간첩만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김수근 정도면 충분히 알았을 것이다. 


'고문시설을 설계한 건축가'라는 오명을 벗으려면 김수근과 관계된 곳에서 설계도 등을 공개해서 이런 누명을 벗어야 할 것이다. 

(이런 오명에도 불구하고... 건물 곳곳에 김수근다운 디테일이 살아있었다. 심지어 건말 담장까지도... 이런 공간이 오는 이 없고 보는 이 없이 방치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주) 이 논쟁과 관련해서 추가 자료 제시하거나 추천해 주실 분은 의견 주세요 


<페이스북에서 받은 의견> 


Haenam Marcel Park : 

건축계에 알려진 일화 중에 1960년대말 김수근이 설계한 중앙정보부 사옥에 대한 일화가 있습니다. 유리를 건축재료로 거의 쓰지 않는 김수근의 건축스타일과 다르게 유리로 전면을 가득채운 건물을 설계했는데요. 중정건물에서 고문행위 같은 것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는 해설이 있습니다. (실제로는 검은 커튼으로 가리고 고문행위를 했습니다만) 현재 충무로 교통방송 사옥이 그 건물입니다. 그런 점에서 건축가의 행적을 조금 더 면밀히 살펴볼 필요도 있어보입니다.


박지훈: 

김수근 선생님이 남영동 대공분실 설계 및 당시 정권에 결탁한건 건축계에서 공공연한 사실이죠. 왜색논란에 한국의 전통건축을 계승하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평가가 엇갈리기는 하지만, 당시 철없던 이십대부터 굵직한 프로젝트를 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박통정권에서 자신만의 철학이 싹트기도 전의 엘리트건축가를 이용했다고 봐요 저는. 이를 거부한 김중업 선생님은 일찌감치 프랑스로 쫓겨났고요. 하지만 먼 미래에도 건축계에선 존경받을 일세대 대표 건축가라는 사실은 변함 없을것 같습니다.



2) 고문시설을 설계했다는 것과 함께 김수근을 비판하는 포인트는 그가 '관변 건축가'라는 점이다. 김종필 등 정권 실세와 절친했던 그는 박정희정권 시절 공공건물 설계를 도맡아했다. 이것 때문에 독재에 영혼을 판 건축가라는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는 두 가지 판단을 더 해야 한다고 본다. 하나는 그가 지은 공공건물에 대한 건축적 평가다. 군부독재가 원하는 파시점적 국가주의를 구현했는지, 아니면 김수근의 건축철학을 나름대로 구현했는지... 이 부분에서 후자로 읽어줄 부분도 만만치 않게 있다고 본다. 최고실세와 통한 덕분에 오히려 건축적 자율성을 더 발휘하지 않았나 싶다. 


다음은 북한 공공건축과의 비교다. 그 시절 비교대상은 북한이다. 군부독재정권이 각종 공공시설 신축에 여념없었던 것은 북한과의 체제경쟁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시절 북한의 공공건축과 김수근의 공공건축을 비교해 보면 그가 건축적으로 어떤 승화를 했는지 비교가 될 수 있다고 본다. 



3) 그가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인가, 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김수근은 르 코르뷔지에나 마리오 보타, 안도 다다오만큼 나에게는 총체적 컨셉을 주는 몇 안 되는 건축가이다. 


위의 질문과 관련해서 흔히 김중업 선생과 자주 비교되는 것 같다. 

그런데 김중업 선생은 박정희정권과 화하지 못하고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한 탓에 국내에 '한국 대표 건축가'로 평가해줄 만한 충분한 건축물을 남기지 못한 것 아닌가 싶다. 

건축가들이 적극적으로 해석할 때 그는 이 칭호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반인들이 느낄 존재감으로는 글쎄다... 



4) 한국적 전통을 계승하는 건축가인가, 하는 부분이다. 


그가 전에 설계한 국립부여박물관 왜색 논쟁 때문에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은 것 같다. 그런데 국립청주박물관처럼 자연경관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우리 전통 지붕을 활용하면서도 모던한 느낌을 주는 건축물도 있다. 


김수근은 대목장이 아니다. 그러니 그가 전통을 계승할 책임은 없다. 다만 건축을 일본적으로 응용하는 것을 고민한 안도 다다오처럼 그도 서양 건축을 한국적으로 응용하는 것을 고민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고민의 흔적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이 부분과 관련해 내 느낌은 그의 전통건축 읽기가 깊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한옥의 역사는 지붕 개선의 역사다. 한옥을 이해한다는 것은 지붕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수근 건축의 응용을 보면 이에 대한 이해가 초보적이지 않았나 싶다. 너무 일찍 관변건축가가 되다 보니 이런 부분을 축적할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한 것 아닌지... 



5)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김수근의 건축이 르 코르뷔지에의 그것처럼 인문학적이고... 

마리오 보타의 스위스 고향마을 건축물처럼 지역 친화적이고... 

안도 다다오만큼 전통의 현대적 변용과 개발시대의 욕망을 자중시키는 면에서 충분한 성취를 이뤘다고 본다. 



김수근에 대한... 건축가분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건축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도 없으면서 궁시렁 궁시렁 끄적거린 것은 부디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길... 기자는 전업 관심가니까... ㅋㅋ)



이 글에 대한 페이스북 댓글들...


Guk Jin Lee :

김수근 건축의 한계와 성과를 보는 것과 동시에 그에게서 사사받은 현대건축가들의 건축도 함께 읽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공공건축을 볼때는 최근에 돌아가신 정기용 선생의 기적의도서관을 비롯한 관변의 틀에서 혁신을 의도한 건축도 보면 좋을것같아요.


아란도 : 정권의 눈에 들었다는 것이 그의 문제...그것도 독재정권에... 시대탓일수도 있지만... 주문식과 예술성 구현의 문제인데...건축이란 돈이 많이드니까 주문식을 안할수 없겠지요. 또 그래야 인지도가 생기니까.... 건축가에게 독재에 부역하는 짓을 했다고 반드시 손가락질 할순없고...고난의 길을 가라 주문할순 없지만, 남영동 건물을 설계할때 어떤 생각이었는지는 궁금해지네요. 고문 기술자도 미학이라 표현했는데, 건축도 인간을 억압하는 것을 미학이라 표현하는지도 궁금하고... 패션은 인간의 선형을 표현하지만, 신체를 억압하기도 하므로..... 김수근에 대한 평가는 그의 미학이 무엇인지가 중요할듯해요. 그런데 그 시대의 건축가일지는 몰라도 존경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의 인간적 고뇌가 있었다면 그것은 일단은 제가 잘 모르므로...논외로 합니다.


김동휘 : 한국건축은 지붕도 있지만, 풍경과 외부공간을 어떻게 끌어들이는가의 문제도 됩니다. 지붕도 역시 외부공간과의 조화의 관점에서 이해해야합니다. 김수근 선생이 한참 활동을 할 당시에는 본격적인 공간과 건축으로서의 한국건축에대한 탐색이 시작되던 시기죠. 7, 80년대까지 한국의 대표적인 관변 건축가로서는 김수근 선생도 있지만 예술의 전당을 설계한 김석철 선생도 있죠.


김란기 : 김중업은 훨씬 덜 관변적이었으나 작품성은 

김수근보다 뛰어났다고도 볼 수 잇지요!

일찍 돌아간 정기용....

아직도 관변을 헤매는 승효상....

그래도 평탄한 조성용...

숨어버린 조건영과 이종상

이일훈은 어디서 뭐 하나

저평가된 우량주 차운기..

깎아내리기는 쉬워도 세우기는 힘든 것이 한국의 인물사~!


소인호 : 공간사옥 한 구석에 김종필씨가 써준 글귀가 액자에 담겨있(지금도 있을지는 모르겠구요)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한자로 '무한공간'이라고 써있었습니다. 공간사옥 지하에는 소극장이 있는데 거기에서 선구적 예술인들의 공연이나 전시가 있었습니다. 건축은 종합예술이다 라는 정의를 실현하려고 했던 것이라 짐작합니다. 월간지 '공간'에도 그때당시 다방면의 예술계 이슈들을 다뤘습니다. '병신춤(공옥진)' '사물놀이패(김덕수)' 가 초연된 곳이기도 하구요. 한국건축의 이해가 짧건 얊건 (르꼴뷔제, 일본전통건축의 모장도 있었지만) 이런 점은 높이 살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Chae-Gyun Kang : 저는 개인적으로 김중업의 작품에 더 높은 평가를 주었으면 합니다.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가라고 하면, 그 시대를 앞서는 독창성이 있어야하고, 이를 균형감있게 조형적으로나 공간적 환경적으로 풀어낼 줄 알아서 사람들로하여금 감동을 자아낼 수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프랑스대사관이 그 대표작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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